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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수의 에코 사이언스

몰려다니는 철새가 안쓰러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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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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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세계 두루미의 날’인 7일을 앞두고 지난 3일 전국 환경활동가들이 국회에 모여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소개됐다. 경기도 연천 두루미의 절반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임진강 군남댐에 물을 채우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떠났고, 창원 주남저수지 두루미도 갈대섬이 잠겨 인근 논바닥에서 ‘노숙’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철원에서는 경원선 복원 공사가 도래지를 위협하고 있고, 낙동강 달성·해평 습지는 4대 강 사업 때 쌓은 보(洑) 탓에 휴식 공간인 모래톱이 물속에 잠겼다는 발표도 있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두루미 사정이 이처럼 열악한데 다른 겨울 철새들 상황은 어떨까. 환경부는 매년 1월 전국 200개 도래지에서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를 실시한다. 1999년 이후 18년치를 분석해 봤더니 연평균 120만 마리가 한반도에서 겨울을 지내고 있었다. 200종(種) 안팎의 새들 중에서도 가창오리 등 숫자가 많은 상위 5종이 68%를 차지했고, 금강호 등 상위 5개 도래지에 철새 45%가 몰렸다. 연평균 42만 마리씩 날아오는 가창오리 떼가 조사 때 어디에 머무느냐가 인기 도래지 순위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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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만경강·동진강 철새 숫자가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에는 가창오리를 제외하고도 각각 8만~9만 마리씩 찾던 인기 도래지였다. 그러나 올해 동진강은 1100여 마리, 만경강은 1만1000여 마리로 조사됐다. 강 하구를 틀어막는 새만금 개발이 본격화된 탓으로 보인다.

반면 울산 태화강 철새는 2001년 2700여 마리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10만 마리가 넘었다. 수질이 크게 개선된 덕분이지만 이곳 철새의 99%가 떼까마귀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처럼 몇몇 도래지에 특정 종이 거대 집단을 이루고 모여들면 전염병 창궐, 농약 오염, 먹이 부족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보호지역 지정 등 철저한 도래지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부족하면 먹이를 줄 필요도 있지만 새들이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안전하게 먹이를 구하고 조용히 휴식 취하기를 원하는 철새들과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탐조객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것도 과제다.

철새마저 사라진 겨울 강변과 호수는 너무 삭막하다. 겨울 진객들이 시베리아와 한반도를 오가는 모습을 앞으로도 계속 보려면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