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2차 사이버 망명에 멍드는 카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사 이미지

남정호 논설위원

며칠째 휴대전화에 깐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에 연신 메시지가 뜬다. 지인들이 새로 가입했다는 내용이다. 러시아인이 개발한 텔레그램은 독일에 서버를 둬 국내 수사기관이 쉽게 자료를 빼낼 수 없다. 이 덕에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지난 2일 이후 카카오톡·라인을 써왔던 이들이 몰려드는 모양이다. 말로만 듣던 2차 ‘사이버 망명(Cyber Asylum)’이 피부에 와 닿는 요즘이다.

사이버 망명은 해외에서 비롯된 듯하지만 실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2014년 10월 초 검경이 카톡을 들여다본 게 알려지자 이용자들은 텔레그램으로 떼지어 옮겨갔다. 9월 마지막 주 138만 명이었던 텔레그램 국내 사용자는 일주일 만에 2배 가까운 262만여 명으로 폭증했다. 대신 카톡 하루 이용자는 2664만 명에서 2553만 명으로 추락했다. 110만 명이 준 것이다. 그 후 1년여 만에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서 똑같은 공포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한물갔지만 얼마 전까지 캐나다산 블랙베리폰이 매니어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어왔다. 대표적 팬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대통령의 휴대전화 사용 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블랙베리폰을 계속 쓰겠다고 고집 부릴 정도였다. 결국 백악관 경호처가 보안기능이 강화된 특수 블랙베리폰을 만들어 줘 사태를 해결했다. 오바마의 마음을 사로잡은 블랙베리폰의 대표적 강점은 바로 난공불락의 보안이다. 통화 내용뿐 아니라 e메일 모두가 보안기능이 강화된 캐나다 내 서버를 통하게 돼 있어 누구도 쉽게 해킹할 수 없게 돼 있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마술 같은 신기술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철통같은 보안이 소비자들에겐 중요한 거다.

요즘 이 땅에선 카톡 등 국내 메신저들의 보안 문제가 사용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미국에선 연방수사국(FBI)에 맞서 휴대전화 보안을 사수 중인 애플이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테러범 일당을 잡기 위해 아이폰 보안장치를 풀라는 FBI 요구를 계속 거절해 재판까지 갔으니 소비자들이 열광할 만도 하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허술하면 미련 없이 사이버 망명을 하는 세상이다. 조금이라도 개인 정보가 새나갈 위험이 있다면 누가 카톡을 쓰겠는가. 또 아이폰 보안 사수라는 애플의 전략이 성공하면 소비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사생활을 중시할수록 아이폰으로 갈아탈 게 틀림없다. 이미 통과된 테러방지법이지만 까딱 잘못하단 카톡·라인 등 국내의 메신저와 삼성·LG에 직격탄이 될 판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