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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폭주족과 함께 달린 4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미국 브루클린의 오토바이 클럽 회원들의 생활 기록한 사진은 바이커들의 독특한 문화 보여주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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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디 K 베스트는 오토바이 클럽 ‘포비든 원스’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거친 바이커들의 이면에 숨은 부드러운 측면을 발견하고 놀랐다.

사진가 샤디 K 베스트가 2011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오토바이 클럽 ‘포비든 원스(Forbidden Ones, FO)’의 다큐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을 때 회원 중 1명은 이렇게 윽박질렀다. “만약 당신이 한 일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가게 되면 당신 거시기를 날려버리겠어.”
베스트는 그 말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FO와 4년간 작업한 끝에 1000여 장의 사진과 100시간 분량의 비디오, 12시간짜리 오디오를 제작했다. ‘포비든 원스 MC(The Forbidden Ones MC)’라는 가제목이 붙은 이 작품이 대중에 공개된 건 2014년 전시회에서 일주일 뿐이다.

1992년 창단한 FO는 표면상으로는 오토바이 애호가들의 사교 클럽이다. 회원들은 회비를 모아 브루클린 부시위크 지역에 있는 클럽하우스를 유지하고 필요한 회원에게 긴급구호 자금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적으로도 서로 연결돼 있다. 대다수가 푸에토리코 출신으로 혈연이나 결혼, 어린 시절 우정 등으로 맺어진 사이다. 또 1980년대 뉴욕시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던 부시위크에서 성장기를 보낸 사람이 많다.

201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부시위크로 이주한 베스트는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는 바이커들의 다큐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는 어렵사리 FO의 클럽하우스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찍을 모든 사진이 일종의 역사 기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황폐하고 가난했던 부시위크에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FO 회원들을 포함한 많은 주민이 그곳을 떠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베스트는 또 자신의 작품이 그곳에서 20년 가까이 꽃피웠던 문화(비록 가난과 범죄에 찌들긴 했지만 그 나름의 문화가 있었다)의 증거가 되기를 바랐다.

FO 회원들은 베스트의 프로젝트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우리는 그가 경찰의 끄나풀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고 클럽의 부회장 라파엘 ‘티토’ 마티네즈가 말했다. 그래서 베스트는 바로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보다는 먼저 회원들과 가까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클럽하우스에 자주 드나들면서 회원들과 함께 포켓볼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며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한 달도 안 돼 회원 80명 중 몇몇이 그에게 사진을 찍도록 허락했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촬영에 동의했다.

베스트는 ‘에이트볼’이라는 별명을 가진 회원에게 특히 끌렸다. FO 회원들은 2000년대 초 동네 문신점 주인의 소개로 에이트볼을 알게 됐다. 그는 마약 관련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다 석방된 후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그 문신점을 찾았다. 회원들은 에이트볼이 재미있고 생각이 깊으며 의리가 있다고 판단해 클럽에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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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클럽의 부회장인 티토 마티네즈가 오토바이 상점 밖에 앉아 있다. 같은 상점 밖에 앉은 마티네즈와 에이트볼, 클럽하우스 앞에서 키스하는 에이트볼과 줄리. 68-

베스트는 2011년 나머지 기간과 2012년의 대부분을 FO 회원들의 사진을 찍으며 보냈다(그중에서도 에이트볼의 사진을 가장 많이 찍었다). 클럽하우스에서의 일상뿐 아니라 각종 파티와 사교 행사에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베스트는 오토바이 1대를 사서 그들을 따라 뉴욕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오토바이 클럽의 실상이 그를 놀라게 했다. 물론 약간의 마약과 회원 간의 불화, 요란한 파티와 총기 소지 등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요소들도 있었다. 하지만 베스트는 그런 부분에만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면 정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TV 드라마 ‘썬즈 오브 아나키(Sons of Anarchy)’에 나오는 폭주족이나 헬스 에인절스(Hells Angels) 같은 실제 폭주족 갱단의 모습을 예상했다”고 베스트가 말했다. “하지만 촬영 첫해에 우리가 한 일은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고 바비큐 파티와 생일 파티(아기의 첫 돌 파티 등)를 연 것이 전부였다.” 클럽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그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매료시켰다. 그는 FO의 부드러운 측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모두가 이 클럽의 좋은 면만 보진 않았다. 베스트가 ‘포비든 원스 MC’의 작업을 시작한 지 2년쯤 돼가던 2012년 10월 16일 동틀 무렵 뉴욕 경찰(NYPD)과 미국 주류·담배·총기단속국(ATF) 합동수사대가 FO 회원들과 관련된 장소 15곳에 동시에 들이닥쳤다. 클럽하우스와 오토바이 수리점, 문신점과 회원들의 집 등이다. 마티네즈 부회장은 아파트에서 총기 7정이 발견돼 다른 회원 7명과 함께 체포됐다.

그 불시단속에서 61정의 총기와 사제 폭발물 7점, 탄약 수천 발과 대포 1대가 압수됐다. 베스트는 이 소식을 그 날 아침 뉴욕타임스를 보고 알았다. 경찰이 내부자 1명의 제보를 바탕으로 작전을 짰다고 알려졌는데 회원들은 갑자기 사라진 에이트볼이 제보자였을 것으로 짐작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에이트볼은 회원들 중에서도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고 베스트는 말했다. “우리는 그가 감옥에서 겪은 일과 데이트했던 여자들, 그리고 삶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했다. 보통 남자들끼리는 잘 말하지 않는 주제다. 그런데 그가 밀고자라니 충격적이었다.”

FO 회원들은 베스트가 에이트볼과 어떤 관계였는지 샅샅이 파고들면서 갈수록 그를 의심했다. 결국 베스트는 클럽에 더는 갈 수 없게 됐다. 그는 그때까지 찍은 사진(약 700장 정도 됐다)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것을 우려해 원판을 모두 감춰뒀다.

그동안 사진의 모델이 됐던 클럽 회원들과 사이가 나빠지고 몇 년 동안 작업한 게 헛수고가 됐다고 생각한 베스트는 다른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뱀프 바이커스(Vamp Bikers)’라는 영화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는 그것이 ‘아주 끔찍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 작업을 시작한 지 몇 달 후 등장인물로 일단의 바이커가 필요했다. 베스트가 (FO 회원들에게) 영화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경찰 끄나풀이 아니며 늘 주장했던 대로 예술적인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 후 클럽 회원들의 의심이 차츰 가라앉았다. ‘뱀프 바이커스’ 영화 작업이 맘에 들지 않았던 베스트는 FO 회원들과 다시 연결된 것을 계기로 영화를 그만두고 클럽 멤버들의 다큐 사진 작업을 재개했다.

NYPD-ATF 불시단속으로 제기된 형사 혐의는 비교적 가벼웠다. 다만 마티네즈는 무기 관련 혐의로 계속 법정에 드나들어야 했고 클럽의 평판은 나빠졌다. FO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 베스트는 회원들과 함께 클럽하우스 위층의 허물어져가는 아파트를 갤러리로 개조했다. 그리고 2014년 이곳에서 ‘부시위크 오픈 스튜디오(BOS)’ 전시회를 열어 근처에 사는 미술가들의 작품을 일주일 동안 전시했다. 여기에 베스트의 작품도 전시됐다. 몸 곳곳에 문신을 새긴 화난 표정의 바이커들을 찍은 흑백사진들 옆에 똑같은 남자들이 부모와 아내, 아이들을 포옹하는 모습이 담긴 컬러 사진들이 걸렸다. 베스트는 영화감독인 마티네즈의 아들과 함께 갤러리 개막식 장면도 촬영했다.

BOS 전시회는 베스트와 FO 회원들의 관계에서 정점을 이뤘다. 후에 베스트는 마티네즈와 싸워 사이가 틀어졌고 클럽하우스에서도 그를 반기지 않자 발길을 끊었다. 더 기록할 것도 별로 없었다. 2012년 경찰의 불시단속 이후 FO 회원 수는 점차 줄었고 마티네즈가 무기 관련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될 경우엔 클럽이 계속 유지될지도 미지수다.

거기다 근처에 호화 아파트와 커피숍, 바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집세가 껑충 뛰어 오랫동안 부시위크에 살던 주민 다수가 그곳을 떠나고 있다. 따라서 FO 회원들이 얼마나 더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른다. 베스트는 ‘포비든 원스 MC’를 기획할 때 ‘사라져가는 삶의 한 방식을 보여주는 역사의 기록’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는 그 순간이 예상보다 빨리 닥치는 게 아닌가 두렵다.

– 아빈드 딜라와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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