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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군 복합 관광미항’ 준공, 제주의 또 다른 명물 예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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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3 면

26일 준공식을 가진 제주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제주 해군 기지). 크루즈항은 내년 7월 준공된다. [뉴시스]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시샘하듯 뭉게구름이 바다에 닿을 듯 낮게 깔렸다. 바람이 제법 있는데도 방파제 품에 안긴 항구는 평온하다. 해군 구축함 한 척과 해경 경비함 2척, 조금 떨어진 곳에 잠수함 한 척이 옆구리를 뭍에 붙이고 정박해 있다. 26일 준공식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18일 ‘제주 민군(民軍) 복합형 관광미항’ 풍경이다.


잠수함 3척을 포함, 이지스함을 비롯한 군함 20여 척과 15만t급 초대형 크루즈 2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고 해군기지 옆에 국제 규격 수영장을 갖춘 복합문화센터와 종합운동장까지 갖췄다.


정박한 4500t 규모의 구축함 문무대왕함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부두 500m쯤 뒤로 펼쳐진 방파제가 워낙 시선을 끄는 까닭이다. 길이 2.5㎞의 ‘ㄱ’자형 방파제 안쪽은 크루즈용 부두로 이용된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선 회랑 형태로 돼 있다.


거듭된 공사 중단으로 크루즈터미널은 내년 7월에야 완공돼 항구에 기착하는 크루즈를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이 방파제는 그때를 기다릴 필요 없이 제주도가 자랑하게 될 또 하나의 명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주랑(柱廊) 위로 만들어지는 2, 3층의 이중 산책로를 따라 일반인의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이 제주도 올레길과 이어지는 30m 높이의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푸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초대형 크루즈와 해군기지에 기항하는 각종 외국 군함을 가까이서 구경하는 재미는 덤이다.


미국의 하와이와 샌디에이고, 호주 시드니, 프랑스 툴롱, 영국 포츠머스, 이탈리아 나폴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항구들이 대규모 군항이 들어선 민군 복합항인 이유가 다르지 않다. 툴롱은 프랑스 제1해군기지가 있는 곳이지만 프랑스 대통령 별장까지 있는 지중해 연안의 유럽 최고 휴양지 중 하나다. 역사적인 해군기지인 영국의 포츠머스 역시 유럽 대륙을 잇는 여객선이 입·출항하는 전형적인 민군 복합항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이들 항구가 굳이 군항을 겸하고 있는 건 그 지역이 대양 진출과 외부 세력의 침입을 막을 전략적 요충인 까닭이기도 하지만 해군기지의 존재 자체가 도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다. 하와이에서 국방예산은 관광수입 다음으로 중요한 경제소득원이다. 하와이 경제의 3분의 1을 지탱하는 게 국방비용이다. 공장이 없는 하와이의 진주만 해군 정비창은 하와이에서 가장 큰 산업인력 고용 창출을 하고 있다. 해군기지에서 지역주민 1만4000명을 고용하고 있고 정비창과 관련 조선업체에서 4500명이 일한다.


호주 시드니는 해군기지가 인근 호텔과 마리나, 오페라하우스 등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스카이라인을 제공해 항구 전체를 세계적 미항(美港)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드물게 남태평양에 위치한 군항인 덕분에 외국 전함이 많이 방문해 그 자체로도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제주 민군 복합항 역시 다르지 않다. 민군 복합항이 들어선 강정마을은 예로부터 해군기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439년 세종대왕이 강정에 ‘동해방호소’라는 왜적 방어용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방어 요충으로서의 지정학적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그 중요성은 더 커졌다. 우리나라는 무역에 절대 의존하고 있으며 전체 교역 물동량의 99.7%가 해상교통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이 제주 해역을 통과한다. 국가의 생명선과도 같은 남방 해역 해상교통로를 보호하는 데 한반도 해역의 지리적 중앙에 위치한 현재의 자리가 해군기지로서 최적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해양 수역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천연가스와 원유 등 해양자원의 보고인 제주도 남방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경제적 파급효과 또한 크다. 현재 제주항의 크루즈 부두 규모가 협소해 기항이 불가능한 15만t 이상 대형 크루즈의 접안이 가능해져 연간 160만 명의 크루즈 승객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아시아 최고의 크루즈 거점항인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20시간 이내에 도착 가능한 유일한 항구라는 지정학적 장점을 활용한다면 한·중·일 크루즈 항로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제주 민군 복합항은 계획에서 탄생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비용을 치렀다. 그중에서도 찬반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완전 치유되는 데 앞으로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비용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제주 민군 복합항의 완벽한 성공밖에 없다. 그것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미항으로 만들어 내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제주=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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