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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클린턴과 샌더스 무엇이 다를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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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선거는 버니 샌더스(왼쪽)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대결로 압축된다.

2008년 10월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버니 샌더스 의원은 워싱턴 연방의회의 상원에서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으로 불린 정부의 구제금융을 질타했다. “우주의 지배자로 알려진 월스트리트의 머리 좋고 발 빠른 은행가들은 일반 미국인이 꿈도 꾸지 못하는 거액을 챙기면서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망가뜨렸다. 그 백만, 아니 억만장자들은 자신이 깨뜨린 항아리 조각을 중산층에게 치우라고 요구한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접전 벌이는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 실용주의자와 이상주의자로 판이하게 비치지만 의정활동 보면 닮은 점 많아

샌더스 의원이 말하는 동안 젊은 보좌관은 그 뒤에서 배 부른 자본가들의 얼굴 사진을 붙인 포스터를 치켜들었다. 대표적 인물이 헨리 폴슨 재무장관(‘골드먼삭스는 2005년 그에게 3500만 달러의 상여금을 지급했다’는 사진 설명이 붙었다)과 리처드 풀드 전 리먼브러더스 CEO(‘지난 5년 동안 3억540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다’)였다.

같은 날 그의 동료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연단에 섰다. 그녀는 샌더스 의원과 달리 차분히 TARP를 옹호하며 누구를 탓하기보다 설득하려 했다. 보좌관을 동원해 포스터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우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 대가는 엄청나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은 보이지 않게는 신뢰와 자신감 회복이고 눈에 보이게는 신용 회복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예비선거에서 민주당의 대선 유력 후보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상원의원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과 무소속으로 민주당 티켓을 노리는 샌더스 상원의원으로 압축됐다. 물론 변수는 있지만 민주당 경선은 그 두 후보의 맞대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비선거 전까진 클린턴 대세론이 형성됐지만 샌더스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서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두 후보는 어떻게 다를까?

정치적으로 독립노선을 걸어온 샌더스 후보는 맹렬한 진보파·이상주의자·반월스트리트 운동가로, 클린턴 후보는 실용주의자·중도파·월스트리트 옹호자로 일컬어지기 쉽다. 그러나 클린턴이 상원의원으로 지낸 8년과 샌더스가 상·하원의원으로 보낸 23년을 자세히 돌이켜 보면 그런 묘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상당히 과장된 캐리커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경합을 벌이는 그들은 분명 스타일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러나 두 후보의 의정활동 양상은 생각보다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양 캠프로선 서로간의 차이점을 부각시켜야 선거운동에 도움이 된다. 클린턴 후보는 ‘행동가’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강조할 의도로 샌더스 후보의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라는 평판을 곧잘 들먹인다.

두 후보가 의정활동에서 보인 차이는 선거운동에 적극 활용된다. 클린턴 후보는 샌더스 후보가 스스로 말하는 ‘일관된 진보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예를 들어 2006년 라틴계가 선호한 이민개혁법을 자신은 지지했지만 샌더스 의원은 반대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반면 샌더스 후보는 클린턴 후보가 2002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2008년 TARP 구제금융을 지지했다는 주장으로 맞선다. 자신은 두 사안 모두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또 그는 걸핏하면 자신과 달리 클린턴 후보는 월스트리트의 기부금을 포함해 거액의 선거자금을 끌어모았다고 지적한다.

샌더스 후보로선 지조 있는 반항아 역할을 하면 미국인의 포퓰리스트적이고 반기득권적인 정서를 잘 이용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미국을 변화시킬 정치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다짐했다. 또 지난해 11월 보스턴글로브 인터뷰에선 “난 거의 모든 문제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상원에서 서로 임기가 겹친 2년 동안 샌더스 의원은 동료 클린턴 의원이 발의한 법안 19건을, 클린턴 의원은 샌더스 의원이 발의한 법안 7건을 지지했다. 표결 내용을 보면 클린턴 의원은 상원 민주당 지도부의 방침을 2008년 99%, 2007년엔 98% 따랐다. 샌더스의 경우는 각각 98%와 97%였다.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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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1일 위스콘신대학(밀워키 캠퍼스)에서 민주당 대선 예비선거 후보토론회의 샌더스(왼쪽)와 클린턴.

두 후보는 의원으로서 큰 업적을 남기진 못했다. 그들 임기 중 대부분에 걸쳐 민주당이 의회를 지배하지 못했다는 정치적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스스로 의회에서 주요 파워브로커가 될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클린턴 의원은 의회에 처음 진출했을 때 납작 업드려 열심히 배우는 초보자의 면모를 보이려는 전략을 택했다. 반면 샌더스 의원은 무소속 노선을 견지해 양당 체제인 의회에서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 특히 그는 하원에선 민주당과 뜻을 같이 하길 거부했다.그럼에도 샌더스와 클린턴 모두 특정 목표를 위해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수완이 있었다. 샌더스 의원은 자신의 주장을 서슴없이 내세운 편이지만 결국은 클린턴과 같은 접근법을 택했다. 의회의 시스템을 따랐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주요 정책 변경에 관해선 두 후보 모두 그렇게 무모하거나 순진하지 않았다.

클린턴은 뉴욕주를 대표하는 초선 상원의원으로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동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그런 전략으로 그녀는 뜨내기 정치인이라는 인식을 불식하고 의회의 정적들까지 동료로 끌어안았다.

클린턴은 ‘테러와의 전쟁’이나 부시 감세 정책 같은 굵직한 국가적 논쟁에 끼어들지 않고 가족이나 어린이와 관련 있는 문제에 집중했다. 또 상원 군사위원회에선 매파로 평판을 쌓았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의회 전문 정치학자 세라 바인더는 “클린턴은 의정활동을 열심히 일하면서도 정치적 미래를 위한 기반을 쌓았다”고 평가했다.

무소속으로 의원에 선출된 샌더스는 클린턴 의원과 달리 의회에서 인맥이 거의 없었다. 아울러 그녀와 달리 동료의원들의 환심을 사는 데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를 표방하며 진보주의 원칙을 추구하는 투사로 명성을 쌓았다.

무엇보다 샌더스 의원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자주 언쟁을 벌였다. 그는 상원에서 월스트리트를 비판하기 10년 전인 1998년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그린스펀 의장을 비난하며 비슷한 표현을 사용했다. “대처-레이건에다 이제 그린스펀까지 그들의 경제 접근법이 과연 옳은지 의혹이 커진다. 그들은 기백 명 정도 되는 세계의 억만장자가 세계 인구 중 소득 하위층 45%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갖는 게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샌더스 의원의 전 보좌관과 동료들은 그가 융통성 없는 원칙과 까칠한 성격으로 손해를 본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우군이 될 수 있는 동료도 등을 돌렸다. 샌더스 의원과 진보적 견해를 공유하던 제리 네이들러 하원의원은 1990년대 하원 민주당의 노선에 관해 샌더스가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돌이켰다. “그래서 난 그를 쳐다보며 ‘그건 자네 잘못이야. 민주당에 입당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니까 그렇지’라고 말해줬다.”

무소속이었던 샌더스는 하원에서 동료 의원의 발의 제정된 법을 수정하는 것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그의 혁명적인 발언에 비하면 법 문구를 첨삭하는 과정은 드러나는 업적도 없는 따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샌더스 의원은 그런 과정을 통해 입법 게임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2005년 샌더스의 의원 사무실은 지난 10년 동안 그가 하원에서 어떤 의원보다 법개정안을 더 많이 통과시켰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당시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과 백악관에서 통과된 그의 개정안은 거의 없다.

클린턴 의원도 입법 게임에 몰두했지만 전략은 샌더스 의원과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모든 정치는 지방에서 시작된다’는 신조를 따랐다. 냉소적이기로 유명한 뉴욕 시민도 그녀를 좋아했다. 뉴욕주 직업소방관협회 회장 마이클 맥매너스는 “여기서 오랫동안 수많은 공직자와 일해왔지만 클린턴 상원의원만큼 우리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뉴욕주 상원의원으로서 내가 논의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만나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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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뉴햄프셔주의 샌더스 후보 지지자(왼쪽)와 클린턴 후보 지지자들.

그러나 올해 민주당 대선 예비선거에서 클린턴 후보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선거구도 뉴욕에 있다. 샌더스가 자주 지적하듯 클린턴 후보는 월스트리트에서 선거자금 기부금과 강연료로 수백만 달러를 받았다. 샌더스 후보는 지난 1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난 골드먼삭스에서 개인적으로 강연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클린턴 후보는 뉴욕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으로서 당연히 월스트리트도 대표해야 했다고 항변했다.

물론 월스트리트는 세입과 고용 면에서 뉴욕주에 가장 중요한 구역이다. 따라서 뉴욕주 상원의원이 월스트리트의 금융계와 원만한 관계를 갖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뉴욕 증권거래소가 선거구에 포함된 민주당 진보파 네이들러 의원은 누구든 월스트리트에서 기부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의회의 입법 실적을 검토해 봐도 클린턴 의원은 상원에서 월스트리트의 이익 강화든 규제 강화든 금융 정책을 주도한 적이 없다.

샌더스 후보는 최근 들어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질타하며 언론의 각광을 받지만 금융정책의 세부 사항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원의원 시절 그는 1999년의 그램-리치-브릴리법(금융위기를 부추겼다고 비난 받는다)을 포함해 월스트리트 규제완화 노력에 반대했다. 그러나 금융파생상품 등으로 월스트리트의 금융 거래가 점점 더 위험해지는데도 그의 초점은 처방약 가격, 사회보장과 근로자 복지, 시민자유 보호에 머물렀다.

샌더스는 상원의원 시절 보훈위원장을 맡았다. 그곳에서 그는 사반세기 의정활동에서 최대의 업적을 이뤘다. 미국 국가보훈처(VA)는 재향군인들이 의료나 복지 등의 혜택을 받기 위해 신청하거나 대기하는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그러다가 2014년 5월 재향군인 40명 이상이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보훈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공연한 비밀이 대형 스캔들로 터진 것이다. 중간선거를 몇 달 앞둔 시점에서 그런 스캔들이 터지자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당시 상원을 지배했다)은 수세에 몰렸다. 샌더스 의원은 상원 보훈위원장으로 보훈정책 개혁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다.

샌더스 의원은 어쩔 수 없이 공화당의 관록 있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손잡고 보훈 관련 재정지원과 효과적인 서비스를 위한 초당적인 개혁안을 제출해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하원의 공화당을 설득하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성이 오가고 수 차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협상 끝에 의회는 재향군인의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는 타협안을 통과시켰다.

클린턴 의원도 합의 도출에 상당한 수완을 보였지만 샌더스 의원의 보훈개혁처럼 두드러진 입법 실적은 없다. 몇 가지 예외(이라크전 찬성 표결 등)는 있지만 그녀가 위험을 감수하고 입법에 앞장선 사례는 찾기 어렵다.

상원의 ‘진보적인 사자’로 불렸던 테드 케네디 의원과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의 수석 보좌관을 지낸 짐 매늘리는 “클린턴이 의원으로서 너무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그게 현명한 처사였다”고 말했다. 클린턴 의원의 ‘밋밋한’ 접근법은 그 뒤를 이은 다른 유명 초선 상원의원들의 모델이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런 접근법은 인기를 잃었다.

테드 크루즈(공화당·텍사스주),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당·매사추세츠주), 톰 코튼(공화당·아칸소주) 같은 요즘의 신참 상원의원은 융합되려고 노력했던 클린턴 의원과 달리 분란을 일으키기로 작심한 듯하다. 그들의 공격적인 접근법은 ‘좋은 게 좋다’는 클린턴 의원 식의 전략보다 오늘날의 파당적인 정치에 더 잘 어울린다. 클린턴 캠프도 후보 이미지에 ‘선동적인 면’을 약간 덧칠하는 실험을 시도한다.

반면 샌더스 후보는 포퓰리스트적인 호소력으로 지방 유세에 수천 명의 열성팬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그는 연방 의회에선 언제나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지난해 가을 그가 워싱턴 외곽의 유세에서 기록적인 수의 지지자를 규합했지만 상원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의원 사무실로 갈 때 인터뷰하려는 기자는 나뿐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않았던 샌더스 후보의 돌풍으로 워싱턴에서 그의 지위가 달라진 건 분명했다. 나는 지하철에서 그와 보훈개혁에 관해 짧게 인터뷰했다. 그는 몇몇 보좌관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려 의원 사무실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이 수줍어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그들 앞에 섰다. 지하철 문이 닫히려 할 때 그 여성이 샌더스 의원에게 “인턴이에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또 “너무 너무 고마워요”와 “깊이 감화 받았어요”라는 말도 들렸다. 그녀의 말을 전부 듣진 못했지만 보훈개혁법안에서 샌더스 의원이 공화당에 양보한 일을 격찬한 것은 아니라고 난 확신했다.

– 에밀리 카데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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