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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화당 “대법관 인준 거부” 오바마와 충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급서한 앤터닌 스캘리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의 후임 인선을 놓고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면 충돌했다.

스캘리아 후임 진보 임명 막기
“청문회도 표결도 않겠다” 강경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23일(현지시간) 대법관 인준 절차를 보류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코널은 “대통령이 대법관 지명 권리가 있듯, 상원도 동의하거나 보류할 헌법적 권리가 있다. 이번 경우 상원은 보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원 법사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들도 이날 회동을 갖고 대통령이 후임을 지명하더라도 인준 청문회를 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매코널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청문회도, 표결도 없다(No hearing, no vote)’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의회 전문지 더힐은 이날 “상원 공화당 지도부가 진보 대법관 임명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공화당은 연방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진보 쪽으로 쏠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진보 성향 4명, 보수 성향 3명의 대법관과 1명의 중도보수 대법관(앤서니 케네디)로 구성돼 있다.

케네디 대법관을 보수에 포함하더라도 이념 성향이 동수인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진보 성향 대법관을 임명한다면 향후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진보 쪽에 유리해질 것이란 셈법이다.

공화당이 내세우는 건 ‘레임덕 혹은 선거가 있는 해에 대법관을 지명해선 안 된다’는 서먼드 룰(Thurmond Rule)이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1968년 스트롬 서먼드 당시 상원의원이 이 주장을 펼친 뒤 민주·공화 양당은 자기 측에 유리하게 서먼드 룰을 주장해 왔다.

 당장 공화당은 조 바이든 부통령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았다. 바이든 부통령은 상원 법사위원장이던 92년 6월 당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공석이 된 대법관을 지명하려 하자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후임 대법관을 지명하지 않기를 권고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척 그래즐리 상원 법사위원장은 “(서먼드 룰이 아니라) 바이든 룰”이라고 비꼬았다.

 이를 두고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념 양극화가 의회에서 국민 여론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다”며 “연방대법원 역시 70년대까지 여러 명의 스윙보트(정파에 상관 없이 의견 내는 대법관)가 있었지만 지금은 케네디 대법관뿐”이라고 개탄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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