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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만족 매뉴얼 ①] 물고기·꽃 하나하나 살폈더니 그림이 말을 거네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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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척! 하면 필 오는 오감만족 매뉴얼

시각편 - 그림 감상 | 척! 하면 필 오는 오감만족 매뉴얼 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전율을 느껴본 적 있나요. 왜 우리에겐 ‘필(feel)’이 안 오는 걸까요. 감은 타고나는 걸까요. 오감만족 매뉴얼의 목표는 여러분에게 삘 꽂히는 경험, 삘 통하는 순간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매뉴얼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내 안의 감수성을 발견해보세요

해설이 없으면 그림에 대한 느낌을 좀체 말할 수 없나요. 그림을 잘 보는 사람은 따로 있고, 내가 그림을 못 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두 질문에 “예”라는 답이 떠오른다면 이 매뉴얼에 주목하세요. 해설 없이 그림 보는 법과 지루함 없이 우리 옛 그림 보는 법을 담았거든요. 미술평론가 손철주 선생님과 ‘간송문화전 5부: 화훼영모’전을 찾은 학생기자 3인방은 책 한 줄 읽지 않고 방법을 터득했죠. 대화를 통해 그림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 이게 그림 보기의 시작이었거든요.

Q 전시회에 가기 전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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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는 미술관에 가기 전 공부를 많이 하는 데도 그림 보는 눈은 잘 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어요. 손철주 선생님은 ‘그림 보는 안목’의 뜻부터 설명했습니다.

선생님 “벼락치기를 한다고 안목이 생기는 건 아니란다. 평소에 부지런히 독서하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구나.”

마침 찬빈이가 그림과 ‘통(通)’했던 일화를 들려줬습니다. 찬빈이가 혜원 신윤복 선생의 ‘미인도’를 처음 본 인상은 ‘심심하다’였대요. 하지만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담은 책을 읽고 나니, 여인의 얼굴이 정겹게 느껴졌다고요.

선생님 “그렇지! 그림 보는 힘을 키우려 낯선 그림만 골라 보며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찬빈이의 예를 보자.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니 그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지.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자라면 그림이 쉬워지고 재밌어진단다. 깊은 생각, 열린 사고. 그게 바로 그림을 보는 안목이지.”

지원 “전문가의 감상평은 얼마나 참고하는 게 좋을까요?”

선생님 “일단 아무 준비 없이 전시장에 간 다음, 그곳에서 느낀 점을 수첩에 적으렴. 집에 돌아와 네 생각과 전문가의 생각을 비교해봐. 같은 생각도 있을 거고, 다른 부분도 있을 거야. 다른 부분에선 ‘선생님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을까?’ 고민하렴. 그 둘을 꾸준히 생각하면 내 안의 선입견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Q 추상화는 어떻게 봐야 하나요

민주에게 추상화는 넘기 힘든 산입니다. 뚜렷한 형태가 없어 그림의 의미를 찾기 힘들어서죠. 그런 민주에게 선생님은 대뜸 음악 얘기를 시작했어요.

선생님 “민주는 요즘 어떤 음악을 듣니?”

민주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요.”

선생님 “왜 가사도 없는 음악을 즐겨 듣니?”

민주 “멜로디와 리듬만 따라 느껴도 흥이 나니까요.”

선생님 “가사엔 노래의 의미가 담기지. 멜로디·리듬엔 느낌이 담기고. 연주곡처럼 추상화는 멜로디와 리듬만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해봐. 그림에 의미가 담겨야 한단 것은 고정관념이야. 화폭 위의 세계에 푹 빠지는 것. 그게 추상화를 잘 보는 법이지.”

Q 좋은 그림이란 어떤 작품인가요

의문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구성’, 잭슨 폴록의 ‘No.1’ 같은 추상화들이 왜 명작인지 알 수 없어서죠. 언뜻 보면 애들 그림 같기도 하고요.

선생님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에서는 사물의 새로운 면을 관찰할 수 있고, 추상화는 점·선·면을 이용해 단순하게 풀어낸 작가의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지. 이처럼 좋은 그림이란 ‘새로운 생각’이 담긴 그림이야. 잘 모르겠다면 신윤복·김홍도 선생의 작품을 떠올려볼까?”

민주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요.”

선생님 “그렇지. 옛 화가들은 자연을 많이 그렸어. 사람은 그저 그림의 배경일 뿐이었지. 하지만 두 화가는 기존의 틀을 깨고 보통 사람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았어. 두 분이 위대한 우리나라 화가로 꼽히는 이유란다.”

Q 우리 옛 그림은 왜 지루하게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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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암 강세황 선생의 ‘향원익청’을 감상하는 황민주 학생기자.

찬빈이에게 우리 옛 그림은 ‘지루한’ 존재입니다. 채색이 화려하지도 않고, 대상 묘사도 평면적이니까요. 선생님은 ‘그 담백함이 멋’이라 설명했죠.

선생님 “서양화엔 사물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하지만 우리 옛 화가들은 그런 그림을 유치하게 여겼단다. 그림이란 대상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닌 ‘의미를 담는 것’이었기 때문이야.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를 보자. 집 모양을 자세히 보면 원근이 맞지 않아. 하지만 매우 훌륭한 그림으로 손꼽힌단다.”

찬빈 “쓸쓸한 분위기가 나요. 사람은 없고 집과 나무만 있네요.”

선생님 “잘 봤구나. 이 그림은 선생이 유배를 갔을 때 그린 거란다. 빈 집은 선생의 외로움을 표현해. 반면 소나무는 푸르름을 자랑하듯 꼿꼿이 서있어. 그림을 통해 자신의 고독과 평정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말한 거야. 게다가 간결한 붓질로 그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지. 옛 화가들이 채색과 묘사를 최소화한 것도 이런 이유란다. 깊은 뜻을 간결한 틀에 담아낸 그림을 좋은 그림이라 봤거든.”

Q 우리 옛 그림을 보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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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 미술평론가가 낙파 이경윤 선생의 ‘기우취적’을 보며 시대에 따라 변한 그림 속 소의 모습을 설명했다.

선생님 “우리 옛 그림에는 선 하나에도 많은 의미가 담겼단다.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선을 그었는지 고민하는 게 감상의 시작이야. 같은 대상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그림도 있어. 어떤 그림은 나무를 점으로, 어떤 그림은 선으로 그렸지. 그 차이를 ‘생각’해보자. 또 우리 옛 그림은 의미를 전달하는 그림이라고 했지. 그림 속 고양이·나비·새 등 동식물에 담긴 의미도 고민해보렴.”

학생기자들은 탁현규 도슨트의 설명에 따라 그림 속 동식물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살펴봤어요. 그림 속 생각을 발견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똑같이 잉어를 그렸지만 한 작품에선 생명력이 느껴졌고, 다른 작품에선 아니었죠. 한 쌍의 새가 등장하는 다른 그림들과 달리, 새 한 마리가 고고하게 하늘을 올려 보는 작품도 있었고요. 아이들은 오랜 시간 그림 곁을 맴돌며 옛 화가들이 그림 위에 남겨둔 생각 찾기에 몰두했습니다. 끝으로 손 선생님은 소림 조석진 선생의 ‘수초어은’이란 작품을 가리키며 우리 그림의 매력을 하나 더 설명했어요.

선생님 그림 속 물고기는 ‘쏘가리’란다. 쏘가리는 한자로 ‘궐(?)’이라고 쓰지. 궐은 다른 말로 왕이 사는 궁을 뜻해. 그림에 쏘가리가 두 마리구나. 그렇다면 궁이 두 개, 즉 왕이 둘이란 소리겠지. 역모·반란을 뜻한단다. 그렇다면 선생은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의미를 모르는 분도 아닐 텐데. 이는 뜻은 과감히 버리고 보기 좋은 그림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란다. 한 마리보단 두 마리를 그렸을 때 시각의 균형이 맞으니까. 이건 우리가 배운 지식과는 또 다른 얘기지. 우리 그림을 ‘단조롭고 지루하다’고만 말하기 힘든 것엔 이런 이유도 있어. 시대 흐름에 따라 꾸준히 변했기도 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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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 미술평론가는 미술 전문 기자로 오래 일했다. 현재 학고재 갤러리의 주간 및 미술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글=이연경 인턴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동행취재=홍찬빈(경기도 고양 아람초 6)·석지원(서울 대도초 4)·황민주(서울 정덕초 5) 학생기자, 자료=간송미술문화재단·고산윤선도유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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