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플리’(1999, 안소니 밍겔라 감독)에 이어 또다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에 출연했는데.
- “‘리플리’ 이후 하이스미스의 팬이 됐다. ‘캐롤’의 원작 소설도 오래전에 찾아 읽었다. 동성애가 금기시되던 1950년대에 이렇게 대담한 작품이 나오다니 놀라웠다. 멜로가 지닌 정서적인 흡인력이 대단했다.”
- 원작 소설에서 캐롤은 테레즈의 시각을 통해 주관적으로 묘사된다.
- “테레즈의 머릿속에서 캐롤을 끄집어내 생명력을 부여해야만 했다. 하이스미스 소설의 매력은 모든 어른에게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이 그들의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다. 난 캐롤이 지적이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주류 세상의 일원이 되진 못하지만,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다. 자존심 센 그에게 외로움은 말 못할 비밀이었을 거다. 무너져가는 결혼 생활을 일으켜 세워보려고 노력하지만, 여자에게 더 끌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 루니 마라와 러브신을 연기했는데.
- “마라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배우고, 또 훌륭한 친구다. 우리 둘 다 데이비드 핀처·스티븐 소더버그 감독과 작업한 적이 있다. 내가 존경하는 두 감독이 모두 마라를 좋아하더라. 그래서 그가 캐스팅되자마자 ‘캐롤’이 잘 될 거라 직감했다(웃음).”
- 처음엔 케이트 블란쳇을 무서워했다고.
- “카메라 테스트를 위해 처음 만났을 때, 블란쳇은 완벽하게 캐롤로 변신해 있었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까지 갖춰 입은 자태가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캐롤에게 첫눈에 반한 테레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난 블란쳇이 ‘엘리자베스’(1998, 세자르 카푸르 감독)에 출연했을 때부터 좋아했다. 그런 사람과 연기하는 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열세 살 때부터 동경해 온 대단한 배우이니까.”
- 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 동성애를 경험해 본 적이 있나. 블란쳇은 양성애자라고 고백한 바 있는데.
- “이번 영화가 내 첫 경험이다. 동성애는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인데, 1950년대 미국처럼 보수적인 사회에서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상상도 안 간다. 당시 레즈비언들은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이스미스의 원작 소설은 확연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배경은 60년 전이지만 지금, 여기의 이야기로 공감할 수 있는 결말이다.”
- 평소 시대극을 좋아한다고.
- “의상과 헤어스타일에 강한 영감을 받는 편이다. ‘캐롤’은 특히 첫 촬영부터 각별했다. 부슬비가 내리는 추운 날, 고풍스러운 우산과 모자를 쓴 여자들이 공원 가득 모여 있었다. 그런 궂은 날씨에 얇은 스타킹과 하이힐로 버티느라 고생했겠지만, 그 광경은 정말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더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