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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파일] 기름 덜 들어가게 주유기 조작해 13억 챙긴 일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유기를 조작해 정량보다 적은 기름을 고객에게 팔아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들은 변조프로그램이 깔려있는 ‘감량기’를 주유기에 설치한 뒤 정량보다 3~5% 정도 적게 주유하는 수법을 썼습니다. 눈에 띄게 많은 양의 기름을 한번에 빼돌린 게 아닌데다 주유된 기름의 양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이들 일당의 수법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주유기를 조작해 기름을 실제보다 적게 판 혐의(사기 등)로 이모(45)씨 등 서울·경기 수도권 일대 주유소 관계자 36명을 붙잡아 이씨 등 4명을 구속하고 허모(51)씨 등 3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수도권 일대 주유소 18곳에서 감량기가 설치된 주유기를 이용해 기름 양을 속여 판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감량기에는 주유시 특정암호를 입력하면 정량보다 3∼5% 적게 주유되게 하는 프로그램이 깔려있다고 합니다. 감량기는 한 대당 200만~300만원 정도 한다고 하는데요, 이들은 이런 감량기를 이용해 13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습니다.

[경찰과 한국석유관리원 관계자가 감량기 조작 후 주유량을 채증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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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석유관리원 단속반원이 주유기 측면 키패드를 눌러 주유량을 조작하는 주유소 관계자의 모습을 촬영

주유량을 조작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선 이들 일당은 단속 차량이 아닌 일반 손님의 차량이 주유소로 들어오면 주유기 측면에 달린 키패드에 암호인 숫자 ‘17’과 ‘전회취소’버튼을 눌러 감량기를 작동시켰습니다. 경찰이 증거수집을 위해 단속에 적발된 주유소를 찾아가 감량기를 작동시키고 50ℓ를 주유하자 2ℓ정도가 덜 주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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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한국석유관리원 관계자가 감량기를 작동시키는 모습.

만약 주유중에 단속이 의심되면 주유기 전원을 순간적으로 껐다 켜 감량기 사용을 중단하는 방법으로 주유량이 정상치로 돌아가게 했다고 합니다.

[경찰과 한국석유관리원 관계자가 감량기 조작 전 정상 주유량을 채증하는 모습 ]

서로 아는 업주들끼리는 한국석유관리원의 단속 차량을 발견하면 차량 번호를 휴대전화 채팅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정량 미달 주유 판매행위가 해마다 증가하는 데다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단속이 미치지 못한 불법 주유소들이 여전히 많을 것으로 보고 한국석유관리원과 공조해 지속적으로 적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단속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고객들의 자율적인 감시도 병행돼야 한다”면서 “주유시 주유량이 적게 느껴지거나 인근 주유소보다 턱없이 기름 값이 싸 의심이 가는 주유소는 경찰이나 한국석유관리원(1588-5166)으로 신고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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