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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괴의 소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해 일본사회를 공포와 분노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그리꼬」 「모리나가」사건의 국내 모방범죄가 일어났다.
유명제과및 식품업체들을 상대로 거액을 요구하며 그 회사제품에 독극물로 보이는 이물질과 경고문을 넣은 과자봉지가 시중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같은 범죄행위는 일찌기 우리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열한 공격성향 범죄란 점에서 불쾌하다.
절도나 강도처럼 금품을 노린 범죄는 그 대상이 분명하고 사건자체도 단순하게 종말을 본다.
그러나 이런 독극물 투입범죄는 비록 금품을 요구하는 목적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 피해자가 일정하지않고 대상이 광범할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준다.
독극물이 들어있는 과자에 일정한 표시가 되어 있다곤 하나 사건과 아무 관계없는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자가 될수도 있다.
그 때문에 그같은 범죄는 범행자체가 비겁할 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저질러진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인 가해행위라 하겠다.
한마디로 그것은 사회전체구성원에 대한 공격행위이며 정당화될 수 없는 사회증악의 표현이다.
그 점에서 범인은 사회파괴의 음모자이며 인간애의 적이다.
물론 일본에서 일어난 모리나가사건에선 치사량 넘는 청산가리를 넣은 초컬리트가 전국의 슈퍼마키트에서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포장에 경고문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동기없이 사회불안을 일으키고 뒤에서 웃는 범인들은 그 반사회적 감정이 결국 인명 대여살상을 실제로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공포와 분노는 실제 살인에 못지 않은 위해행위임을 깨달아야겠다.
실제로 일본의 시민들이 「1억2천만의 인질」행위란 의미에서 그리꾜-모리나가 사건의 범인들을 공적으로 삼아 피해제과회사의 제품을 사주는 운동도 전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70년대말 팔레스타인 게릴라가 반유대 공격의 일환으로 이스라엘산 오린지에 독을 주사해서 유럽수출을 방해했던 사건도 상기해야한다.
팔레스타인 게릴라는 1차적으론 성공을 거두었지만 음식물에 독을 넣는 비열한 행위가 결코 대의일수 없다는 세계의 여론 앞에 굴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독극물이 든 오린지를 스스로 수거했던 것이다.
최근 유럽지역에서 발생한 동물애호단체들의 독극물 투여사건도 마찬가지다.
동물애호의 정신이 숭고하고 좋은 것이지만 거기에 어긋난다고 독극물로 시위하는 것이 결코 인류애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 못된다는 여론의 압력 앞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 점에서 지금 우리사회에서 새로 머리를 들고 있는 독극물 협박범죄는 비록 산업사회 질병의 찌꺼기이겠으나 일찌감치 뿌리를 뽑아야할 악이 분명하다.
수사당국의 철저한 대응은 물론이려니와 우리사회 모든 성원의 일치된 방어감시 노력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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