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정권 교체 염두에 둔 발언…박 대통령, 루비콘강 건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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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국정에 관한 연설’을 마친 뒤 여당 의원들과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앞 줄 왼쪽부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조원진 원내수석 부대표, 박 대통령, 홍지만 의원. [사진 강정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서 북한 문제 전문가들이 가장 주목한 건 “북한 정권의 변화”라는 표현이다. 박 대통령은 연설 중간에 “핵 개발이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거나 “북한 정권을 반드시 변화시켜서”라고 언급했다.

외교·통일 전문가, 분석과 조언
압박만으로 핵 포기시키기 한계
북한 다루는 새 판 짜겠다는 의지
북과 수교 맺은 동남아 국가들
미국 통해 제재 동참 유도해야

 고려대 김성한 국제대학원 교수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정권 변화(regime transformation)와 정권 교체(regime change) 모두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라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해 느끼는 박 대통령의 위기감이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고려대 남성욱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 정권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붕괴까지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가장 민감해하는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까지 염두에 둔 강경 발언”이라며 “박 대통령이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집권 4년차인 박 대통령이 “체제 붕괴”까지 언급한 만큼 현 정부 임기 내에 남북관계 개선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쉽사리 들어서진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북한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미사일을 개발한다고 주장해왔다”며 “남북 간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직 통일부 고위 관료들도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동훈 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차관은 “‘마이웨이’ 일변도로 가는 북한 정권을 길들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라며 “지금까지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강한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압박만으로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시작”이라고 언급한 부분에도 주목했다. 한국이 남북관계의 보루를 포기하면서까지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다루는 새 판을 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에서의 공조를 다각화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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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김 교수는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을 미국을 통해 압박하는 방식도 사례가 될 수 있다”며 “남중국해 이슈를 두고 미국과 협력해야 하는 동남아 국가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란 제재에서 유럽연합(EU) 소속 영국·네덜란드 선박 보험 회사들이 이란 선박의 보험 혜택을 거부함으로써 상당 부분 제재 효과를 봤다”며 “북한 선박 제재와 관련해 제3국과 공조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경직 일변도로만 갈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했다. 남성욱 교수는 “북한 정권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유연성까지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동 전 차관도 “단기적으론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으론 모든 문을 닫아 놓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글=전수진·안효성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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