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작가, 기자가 되다] 수저색깔 한탄하는 청춘(靑春)의 자화상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노력의 ‘인플레’가 일어난 사회에서 성장의 자신감은 추락…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허리를 바로 세워 꼿꼿이 서는 것이 먼저다

희망은 여기에 없고, 지구 저편에만 있다?

작가는 ‘수저색깔론’ 속에서 시대의 진실과 시대의 무력을 동시에 통찰한다. 그는 ‘주입식 희망’이 주는 위안의 허망함을 보았다. 필요한 것은 좀 더 철저한 고민, 자신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살아가는 힘’이다. 무한 비교의 시대, 끊임없이 너와 나를 가르고 평가하는 불행의 시대에, 자신이 긍정할 수 있는 인생의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기사 이미지

서울대학교 / 사진·중앙포토

지난해 마지막 달 중순, 서울대생 A군이 관악구 신림동 5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구급차가 달려왔지만 병원으로 옮겨진 직후 숨졌다.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대통령 과학장학생’으로 서울대에 입학했으며, 최근 약학전문대학원에 지원해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말고도, 모두를 안타깝게 한 건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었다. ‘제 유서를 퍼뜨려 주세요’라는 제목이었고, 그는 ‘고통스럽다’고 고백했다. 이 세상의 합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너무도 다르며, “금전두엽을 가지지도 못했으며,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수저 색깔”이었다고 토로한 것이다. ‘장래 희망은 정규직’이라는 말로 시작해 지난 한 해 들끓었던 ‘수저론’의 정점을 찍는 사건이었다.

‘아니 왜, 아직 이토록 어린 나이에, 어째서?’라는 질문과 의구심은 불필요하다. 중요한 건 그가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이며, 그것을 타인이, 이 사회가 알아주길 바랐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더 이상은, 이 세계와 이 도시와 이 현실 자체를 ‘직시’하지 않으려 했다는 진실뿐이다. A군은 투신 직전에 메탄올을 마셨고, 유서에서 암시하듯 자신이 혹여 깨어나더라도 실명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방에서 싸늘히 뒹굴었을 빈 메탄올 병. 시력을 잃더라도 두 눈으로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무엇이, 무언가가, 지금 이 사회에 있다. 비극은 오로지 그것이다.

그리고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거론하며,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정의하려는 청춘들이 그 비극 속에서 다를 것 없는, 달라질 것 없을, 여전한 일상을 산다. 2000년대 초반 갓 20대가 된 이들을 기다린 건 ‘삼포세대’라는 낙인이었다. 생활에 쫓겨, 학자금 대출상환에 갇혀, 취업난에 시달리며, 청춘들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것. 가정을 꾸리는 통상적인 단계를 인생에서 자발적으로 누락시켰다는 점에서 그들의 현재는 고충 아닌 고통으로 읽혀야 한다.

시절은 더욱더 수상해져서, 삼포는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오포로, 꿈과 희망도 포기하는 칠포로, 2010년대 이후로는 ‘무엇이든’ 다 포기하는 엔(n)포세대로까지 이어져왔다. 포기할 게 너무 많아서, 이 사회에서는 ‘이룬다’는 것이 다른 세계에서나 가능할 만한 단어인 것만 같아서, 엔포세대는 이제 나는 무슨 수저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모의 자산이 나의 현재를 만들고, 그 자산의 상속으로써만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수저론이다. 신(新) 계급론이다.

“힘 있는 자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

기사 이미지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거론하며 자신을 자각하고 정의하려는 청춘들.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엔(n)포세대의 서글픈 뒷모습이다. / 사진·중앙포토

누구는 금·은·동수저이며, 누구는 흙수저다. 내가 흙수저인가 아닌가 동그라미를 쳐나가며 빙고를 완성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플라스틱 수저, 스테인리스 수저 등의 또 다른 ‘등급’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금수저 위의 ‘다이아몬드 수저’도 출현한다. 좀 더 세밀하고 정밀하게 판단할 기준을 요구하거나, ‘(손으로 퍼먹으며)수저가 뭔가요?’라는 식의 자조 어린 개그도 범람한다. 지금 이곳이 지옥이라는 ‘헬(Hell)조선’, 그리고 ‘설국열차’와도 같은 이 지옥을 탈출해야만 한다는 ‘탈(脫)조선’이 유행한다. ‘저녁이 있는 삶’과 ‘내 아이를 낳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삶’을 찾기 위해 엔포세대는, 그리고 스스로 흙수저라 믿는 청춘들은, 미용과 용접을 배워 이국(異國)으로 떠난다.

희망은 여기에 없고, 지구 반대편에 멀리 있다. 고로 수저론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던 아름다운 멜로디에 배반당한 결과물이다. 모두가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인식과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가 곧 가진 자, 힘 있는 자가 된다는 믿음이 만연하다. 내가 아니라 나의 부모가 지닌 자산이 나를 ‘만든다’는 생각은 스스로의 미진한 성취 앞에서 무력해지고 만다.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라고 외친 A군의 마지막 목소리는 그래서 아프다. 통증이 가시지 않은 채로, 몇몇 2030세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짐작 가능했던, 혹은 뜻하지 않았던 내용도 있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3학년 재학생 김연우(가명·여·22) 씨는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지만 소득이 부정기적이고, 어머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이제 고3이 되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연우 씨는 스스로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실용음악학원 레슨비를 낸다. 학교를 다니는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에 50만원가량을 버는데, 이 중 레슨비로 30만원을 낸다. 20만원 남짓 손에 쥐는 용돈을 벌기 위해, 연우 씨는 레스토랑 서빙이나 증권사 전화상담, 대형 쇼핑몰 내의 매장(과자점, 빵집, 화장품) 등에서 일했다.

힐링-위선된 행복, 강요된 정화작용

기사 이미지

`극한알바`의 장소 중 하나, 스키장. / 사진·중앙포토

지난 2~3년간 너무도 많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한 건, 직원들 간의 텃세와 견제, 점주의 욕설과 성희롱 탓이었다고 했다. “식당이나 레스토랑 같은 데는 마초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여자애니까 상냥해야지, 웃어야지, 라며 윽박지르기가 일쑤고, 추행을 서슴지 않았죠. 과자점이나 화장품 매장에서 일할 땐 여직원들 간의 질투와 은근한 견제가 힘들었어요. 아마 그들도 비정규직이었을 거고, 매일같이 계속되는 야근에 고생스러웠을 거라고 봐요.”

온갖 서비스직에서 일하며 연우 씨는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감정노동에 시달리느라 피로했다고 말했다. 복사나 문제풀이를 돕는 등 학원보조 알바로 일할 땐 돈을 떼이는 경우도 많았다. 최저시급을 약속했지만 월급을 받아 계산해보면 받아야 할 금액보다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했고, 어느 날 갑자기 학원이 없어져 있기도 했다. “수저론이란 것에 대해선 일단 동의해요. 아직 20대 초반인데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평생 굴레인 것 같아서 답답하죠. 일을 하면서도 불만족스러워요. 월급을 받아도 이 돈이 금방 없어질 걸 아니까,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버리고 마는 걸까, 생각하면 보람 같은 것도 안 느껴지고요.” 학부 전공은 철학이지만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은 연우 양은, 꿈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레슨비로 쓴다. 연우 양은 말했다. “요즘엔 가수로 데뷔하는 나이가 부쩍 빨라져서 마음이 조급해요. 꿈에 대한 희망을 놓고 싶진 않은데, 그런 제게 돌아오는 건 넌 현실을 몰라, 라는 질책뿐이에요.”

텔레비전 방송프로그램 서브작가로 일하는 원지혜(가명·여·26) 씨는 학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3년 차다. 지혜 씨는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고 검정고시를 치러 4년제 대학 문창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의대진학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입학 후에도 수능공부를 계속했다. 끝내 의대에 합격하고도 진학을 포기한 건, 입학금 1900만원이라는 감당 못 할 액수 때문이었다. 유치원 보육교사로 일하는 홀어머니와 중학교 2학년인 어린 동생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꿈을 접었다. 그러다 문예창작을 공부하며 점점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졸업할 무렵 선배가 소개해준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방송국에서 일하게 됐다. “살아가려면 제 손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소설 쓴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취직했어요. 하지만 방송작가는 평생, 계약을 프로그램 단위로 하거든요. 고용 권한은 PD급 이상에게 있고, 운이 좋아야 계속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20년을 일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생각을 하면 암담하죠. 언제쯤 소설가로 등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지혜 씨의 어머니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퇴직시기가 빨라서 요즘 제2의 인생을 고심하고 계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그녀는 이제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동생을 자신이 ‘케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의존과 기대가 때로는 불편하고, 그로 인해 매일 소모되는 에너지가 크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 씨는, 수저론 자체에 ‘지극히’ 공감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흙수저로 자수성가하든, 금수저로 ‘갑질’하든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며, 수저론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데에는 반감마저 든다는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힐링’이란 단어에 분노했던 적이 있어요. 그 단어 자체가 우릴 속인다고 보거든요. 위선된 행복, 강요된 정화작용이랄까요. 제겐 수저론도 그래요. 자꾸만 강요받고 학습되는 기분이어서요.” “이제 와서 이런 논란은 새삼스럽다”고 느끼는 배경에는 지혜 씨가 과거로부터 오랜 시간 축적해온 불평등과 불공정의 인식들이 있다. 지혜 씨의 고민에 하나를 더 보태 말할 수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나리오를 쓰는 남자친구다. 2~3년 안으로는 결혼도 하고 싶은데, 불투명한 미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혜 씨의 남자친구 나윤재(가명·31) 씨는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고, 졸업을 한 지도 서너 해가 되었다. 정규 직장을 잡지 않고, 공연기획사에 소속된 그룹 내 집필 작가로 일하고 있다. 공동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해서 기획사에 ‘세일링’하거나 영화제작사에서 의뢰받은 스토리를 써주기도 한다. 하지만 일정한 보수가 지급되지는 않기 때문에,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쓴다. 시나리오를 쓰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기는커녕, 문서로 확실히 정리하지 못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적도 많다. “취업 자체에 대한 생각은 없어요. 생활비 정도만 벌면 되는 거죠. 돈에 대한 조급함이나 갈급 함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꿈을 위해서 조금만 더 해보자, 하고 있어요.”

불안과 불확실로만 점철돼 있는 세상

서른이 넘어서도 취직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아들, 윤재 씨만 바라보는 부모님께는 당연히 죄송스럽다. 윤재 씨는 요즘도 매일같이 어머니로부터 “지금이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어떻겠니”라는 말을 듣고 있다. “가까운 시일에 ‘펫 시터’ 자격증을 따볼까, 하는 계획도 갖고 있어요. ‘반려동물관리사’라는 건데요, 쉽게 말하면 개 유치원 선생님 같은 거랄까요. 사람들이 반려견을 출근할 때 맡기고 퇴근할 때 찾아가는 방식이고, 맡겨진 시간 동안 개와 놀아주거나 훈련시키거나 잘못된 습관을 교정해주는 등의 일을 하는 거예요.”

나이 들어서도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해서 고민하고 있지만, 윤재 씨는 그러면서도 사실은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도망갈 구실을 만들어놓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는 생활을 위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말고, 다른 여지를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것에 스스로 도망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수저논란도, 보이지 않는 미래도, 윤재 씨에게는 신(新) 계급 사회를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불편하고 부당하기만 한 현재다.

신지환(가명·34) 씨는 지난해 가을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었다. 현재는 외주 일을 받아 프리랜서로 일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 7년간 출퇴근하는 동안 결혼을 하고, 가정도 꾸렸기 때문에 일을 완전히 그만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몇 달 뒤엔 아기도 태어날 예정이다. 그러나 지환 씨는 한동안은 다시 구직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지금껏 여러 출판사를 전전하며 일해왔는데, 소규모 출판기업에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직장 생활을 통해 자신의 삶이 성장하고 발전할 거라는 믿음이 없다는 게 또한 둘째 이유였다.

“상업출판에서는 도서의 판매량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책 만드는 편집자로서의 자긍심이나 자부심을 느낄 만한 계기가 많이 없었어요. 무엇보다, 직장에서 만난 선배들처럼 되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죠. 5년 후의 내 미래가 저 선배다, 라고 생각하면 힘이 들었어요.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엔 직장에 다니며 불만족스런 나날을 보내는 동안 ‘아, 나는 단지 매달 200만원쯤의 돈이 필요했을 뿐이구나’라고 깨닫게 됐어요. 이 생활에 대한 아무런 불만 없이 나의 현재가 기계적으로 흘러가게 둔다면, 타협만으로 일생을 허비하듯 보내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서글플 것 같았어요.”

서른넷의 나이. 아내와, 곧 태어날 아기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러나 반 년 전 직장을 그만두었고, 지금 이 시간이 불안과 불확실로만 점철돼 있다는 걸 안다. 지환 씨는 그래도 다시 직장이라는 굴레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희곡을 쓰고 연극 연출을 하겠다는 꿈이 있으니 버티면서 기다리다 보면 예상치 못한 다른 길이 열릴 거라는 예감, 그리고 지금까지의 직장 생활로부터 얻은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을 거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의 ‘각’이 그려졌을 거예요.” 투신한 A군에 대해, 지환 씨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극단적인 선택인 건 분명해요. 아깝죠. 예민한 천재였을 거예요. 자신이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어떤 인생이란 것이 눈에 선히 그려졌고, 그것이 암울했고, 이기지 못할 절망에 휩싸였겠죠. 그렇다고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지환 씨는 물었고, 계속 얘기했다. 이 시대는 개인이 체감하는 진실만이 중요해졌다고, 누구 하나 유별나거나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고, 힘들어 하는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하고 귀 기울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 아프면 환자일 뿐

기사 이미지

`SNL` 에서 `아프면 환자다` 라는 말로 공감을 얻은 유병재. / 사진·tvN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캡처

지환 씨에겐 서른한 살의 남동생이 한 명 있다고 했다. 과학고를 졸업해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군에서 제대한 뒤 가구 회사에 다닌다. 아직까지 취업하지 못한 동기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서 ‘이 정도면 괜찮나?’ 하고 가끔씩은 자위할 때도 있다고 한다. 여자친구도 있고, 결혼에 대한 계획도 세우는 중이다. 하지만 동생은 얼마 전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와 물었다. “형, 이렇게 벌어서 언제 어떻게 결혼하지? 월세든 전세든 집값이 너무 비싸다.”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수 없어 속상하지만, 지환 씨는 동생이 결혼 시기를 좀 미루겠다고 말하는 걸 씁쓸히 들어주었다. “어쩌면 금수저니 흙수저니 떠들어댈 수 있는 것도 일부일지 몰라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수저론 자체에 관심을 두기도 힘들거든요. 위로 올라가고 싶다, 어쩌고 하는 신분상승 욕구에 휩싸여 있는 것도 아니에요. 사회나 회사에서 정해준 계급을 따라 올라가려는 욕심도 없죠. 왜 이렇게 힘들까, 고민할 뿐인데 그걸 수저라는 명분 아래에서 곱씹고 싶진 않아요.”

반면,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이제 다시 진학을 선택했거나 고려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한 명은 명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에 진학한 이재연(가명·여·30) 씨고, 다른 한 명은 앞서 나온 연우 씨와 지난해 타 전공 수업을 함께 들었던 학우 안현수(가명·32) 씨다. 재연 씨는 학부 졸업 이후 2년 반 동안 여행을 다니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진학 이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강남에서 나와 오피스텔로 독립했고, 등록금과 월세, 생활비 모두 부모님께 지원받고 있다. 스스로 ‘은수저’ 정도라고 생각한다는 재연 씨는 “답답해서 나온 얘길 거예요. 화가 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수저론을 이해하면서도 부모님을 수저에 대입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건 옳지 않다고 느낀다.

“직접적으로 와 닿는 얘긴 아니에요. 수저론이 생겨난 배경에는 너는 무슨 수저니, 나는 흙수저야, 이렇게 놀면서 연대하고 위안받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 보기에는 마음이 좀 좋지 않죠. 사실 저로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예 없을 리가 없죠. 현재 안정적인 수입이 없고, 나이 서른에도 여전히 학생이고, 여자친구와의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가 없어서’ 일단은 ‘덮어놓은’ 상태거든요. 하지만 이런 말을 친구들에게 하면, 남들보다 편하게 살면서 징징댄다고 볼 게 뻔해요.”

현수 씨는 신문방송학 전공으로, 과목은 모두 이수했지만 졸업을 유예 중이다. 재학 중에도 여러 번 휴학, 복학을 반복했고, 군대에 다녀온 후에는 충분히 시간을 두어 진로를 고민했다. 올해로 서른둘, 현수 씨는 최근에 와서야 하고 싶은 일을 결정했다. 앞으로 1년 정도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찍어 포트폴리오를 만든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에 진학할 계획을 세웠다. 앞서 재연 씨처럼, 현수 씨 역시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의 경제적 물질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역시 강남에 거주하며, 부모님께 매월 130만 원의 용돈을 받아 생활한다. 병원비와 통신비, 책값 등은 ‘엄마 카드’로 따로 사용하는데도 용돈이 부족해 더 받을 때가 잦다. 수저론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잠시 머뭇거렸다.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라는 생각도 들어요. 별로 고생 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마음도 사실은 있고요. 친구들 중에는 저보다 훨씬 더 잘사는 애들도 많아요. 그 애들은 취업을 해서도 자기가 버는 월급을 모두 용돈으로 써요. 그러면서도 퇴근 후엔 부모님 지원으로 경영대학원 같은 데도 다니고요. 멍청한 애들 아니에요. 다들 똑똑하죠.”

분명 우리 사회에서 수저론은 실재하고,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의 간극도 커 보인다. 자산 20억 이상, 연소득 5천만원 이하 식의 통계적 분류가 아니라 비합리와 불공정으로 점철된 ‘불안’의 심정적 단계가 더 세밀한 듯하다. 저마다 꿈을 지녔다는 것 말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확신이 없는 일상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위안은 ‘아프면 환자다’라는 냉소로 대응하고, ‘자학하는 잉여들’이라는 지적엔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일갈해버린다. 노력, 또는 ‘노오오(n) 력’하지 않는다는 기성세대의 비난과 착취당하는 젊은 세대의 열정이 공존한다.

모두가 노력하는 시대, 노력의 ‘인플레’가 일어난 사회에서 개개인이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떨어진다. 뛰어오르기 위한 발판의 유무가 새삼 아쉬워지고, “노력하는데 왜 안되지?”라는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갖지 못하면 뒤처지고 만다. 결국, 너와 내가 똑같이 도전하고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누구는 ‘안정적으로’ 실패하며, 또 누구는 ‘실패하면 끝이다’라고 느끼는 차이가 이 사회의 심리적 흙수저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꿈을 버리고 돈에 속박되긴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말미에 연우 씨는 ‘꿈’을 이야기했다. 올겨울, 두 번째 다리 수술을 하고 퇴원해 집에 누워 있는 탓에 한동안은 아르바이트나 학원을 오가지 못하는데도,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암담한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제 곁의 친구들 중에서도 정말 부유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격차가 심해요. 어쩌다 다같이 만나더라도 서로 씀씀이가 다르니까 어느 한쪽은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죠. 어느 날엔 싸움이 붙어서, ‘가지고 태어난 게 내 잘못이야?’라는 등 고성이 오간 적도 있고요.”

그래도 가수가 정말 되고 싶기 때문에, 아름다운 노랫말을 써내고 싶기 때문에, 꿈을 버리고 돈이나 생활에 속박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지혜 씨와 윤재 씨 커플은 뜻밖에도 ‘가치’에 대해 말했다. “노력하지 않아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라는 기성세대의 비난과 지적은 거짓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비정규직이라 당연히 매일이 불안하지만,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어떤 가치, 그것의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가진 것을 쓸 수 있고, 그래서 열심히 살 수 있다면 나의 가치는 충족되고 있다고 믿으려고요. 우스운 말이지만, 형편 좋은 자들이 누리는 소위 ‘벤츠’ 같은 것에 제 자신이 흥미가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죠.”

2006년부터 독립영화를 찍었다는 배우 오희준(29) 씨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희준 씨는 중고교 시절엔 복싱을 했고, 중부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등록금 때문에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거든요. 학교 다닌다고 또 부담을 지워드리는 게 싫었어요. 군대 다녀와서 연극하던 친구 따라 극단에 갔는데 유해진 선배를 봤고, 그 연기를 본 이후로 배우의 꿈을 키우게 됐어요.” 그는 연기하겠다는 목표로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뒤 오랜 시간 고시원을 전전해야 했다.

행복이란 감히 말할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

“고시원에 살던 시절에 하루에 한 명씩은 꼭 누군가 울었어요. 벽이 얇으니까 그 소리가 그대로 다 들렸는데요. 절망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힘을 내게 되더라고요.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위안도 받으면서요. 내일은 다 같이 좋은 날이었으면, 하고 바랐죠.” 그는 <잉투기> <소셜포비아>와 같은 다수의 독립영화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했으며, 현재도 TVN의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에 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섭외가 없을 땐 의류 납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했고, 최근에는 촬영팀 스태프로도 일했다.

“물론 집이 부유해서 연기를 취미로 하는 분도 많이 봤어요. 하지만 내가 경제적으로 부족하다고 해서 수저 논리 같은 것으로 고민하고 싶진 않아요. 저 스스로 흙수저라고 규정짓고 싶지도 않고요. 아픔이나 상처, 실연, 고난, 이 모든 게 연기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고 싶죠. 고시원에 살다가 월세 방을 얻고, 얼마 전엔 전세로 옮겼어요. 단계를 밟아나 간다는 성취감, 나는 잘하고 있다는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싶어요.” 희준 씨는 소속사나 매니저가 없어서 사비를 들여 스타일링을 하고, 혼자 촬영장에 간다. “‘치인트’ 촬영장에서 매니저 없는 배우는 저 뿐이에요”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웃었다.

청춘들에게 꿈, 가치, 행복이란 감히 말할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이란 인식. 아마도 그것이 ‘루저’와 ‘유리천장’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삼포세대의 출발이었으며, 엔포세대의 결론이자 수저론의 기저였을 것이다. ‘멘붕(멘탈 붕괴)’의 시대에 ‘정신 승리’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조와 비아냥이 넘쳤고, 행복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오글거리는’ 성질의 것인 듯 보였다. ‘시저지탄(匙箸之歎)’, 수저 색깔을 한탄한다는 신조어가 지난해의 키워드였고, 그만큼, 스스로의 절망에 함몰돼버린 2030세대 그리고 그것을 용기·노력·패기 부족이라는 개인의 무능으로 돌리는 기성세대의 비정한 방관 주의가 있었다.

유서에서 A군은 말했다. ‘다 잘될 거야’라는 식의 위로는 오히려 독이라고. 안다. 막연한 낙관이나 주입식 희망이 주는 고통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다만 우선은, 절망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재일한국인 교수 강상중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좀 더 철저하게 고민하고 자신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살아가는 힘’이 필요하다. 무한 비교의 시대, 끊임없이 너와 나를 가르고 평가하는 불행의 시대에, SNS에 게시된 정형화된 행복감이 아닌 자신이 긍정할 수 있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이런 말 또한 그저 그런 타협과 자기계발의 독려쯤으로 이해될 우려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좁은 고시원에서 들려오던 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파하던 밤에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힘을 냈다는 희준 씨의 말을 떠올리며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급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라는 현실에 분노하는 젊은 세대의 의지와 청년실업을 방조하는 사회 부조리를 개선하려는 기성세대의 성찰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우리, 절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여기, 20대가 끝나갈 무렵, 독일 뮌헨의 미술관에서 한 점의 그림을 만나 비로소 방황이 끝났다던 강상중의 고백을 덧대어 놓는다. <1500년의 자화상>이라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앞에서, 그는 스물여덟에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똑바로 서라.’ 절망하지 않고, 허리를 바로 세워 꼿꼿이 서는 것.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서 있다고 생각하면 더 나을지 모른다. 방과 방 사이, 얇은 합판을 사이에 두고 모두가 함께 울고 웃었던 것처럼. 타자와의 유대는 멀리 있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대, 절망하지 않는 힘의 바탕이 되어줄 거라고 믿고 싶다.

염승숙 - 서울에서 태어났고,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현대문학>에 첫 작품을 실었다.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맨>, 장편소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를 펴냈다. 읽고 쓰는 일을 매일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소설’이라는 것과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좀 더 부지런해지고 싶고, 이 시대와 사회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날카로운 눈을 갖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