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요리방] 맛이 있는 프로포즈 새우 볶음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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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오늘 연합동아리 모임에 늦어 헐레벌떡 뛰어들어간 나는 한 예쁜 새내기 후배를 보곤 더욱 요란해지는 심장의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노란색 꽁지머리에 귀걸이까지 마스터한 불량스러운 나에 비해 그녀는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순진무구형 그 자체였다. 슬슬 장난기가 발동했다.

"너 마음에 드는데…, 내가 30살, 네가 29살이 될 때까지 결혼 못하면 우리 둘이 결혼하자!"

돌아온 답은 "그래요"다. 그녀는 '설마 29살까지 결혼 못할까'라는 자신감인지, 처음 본 선배의 농담이 귀찮았는지, 어쨌든 무척 당돌하게 맞받아쳤다.

그 후 대학 졸업→군대 제대→회사 입사.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운명의 시기가 다가왔다. 30살이 1백일 남은 29살의 어느날. 결혼은 해야겠는데 여자는 없고…. 퍼뜩 8년 전 농담이 스쳐 갔다.

'앗싸-.' 당장 전화기를 들었다.

"D-1백일입니다!" "뭐..뭐욧?" "D-1백일이라고. 너 아직 결혼 안했지?"

이 전화를 시작으로 우리는 다시 만났고, '말이 씨가 된다'는 옛 속담을 증명하듯 2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11년 전 기억을 더듬어 오늘은 그녀를 처음 보고 떨리는 마음으로 먹던 새우볶음밥을 나 꼼꼼이가 재연한다.

오후 6시에 칼 퇴근. 꽃바구니 사랴, 재료 준비하랴, 촛불 켜랴, 카메라 설치하랴, 무척 분주하다. 앞치마를 부랴부랴 끼워 입고 한 손엔 칼자루를, 다른 손엔 새우를 붙잡아 멋지게 조리. 다음은 왼손에 프라이팬, 오른손엔 주걱을 들고 계란.야채.밥을 넣어 살살 볶아주니 그야말로 11년 전 그 추억의 볶음밥 탄생. 여기서 잠깐! 오늘의 포인트는 계란과 새우.

계란은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른 후 지글지글(하얀 연기 피어 오르기 직전)되면 얼른 깨 넣고 소금.후추를 뿌려가며 스크램블에그 타입으로 따로 만들어 놓는다. 그 다음은 새우.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배를 가른 생새우살을 넣고 반쯤 익을 무렵 정종으로 잡냄새를 없앤다. 네 개는 장식용으로 꺼내 놓는다. 야채 썬 것을 함께 넣고 볶다가 밥을 넣고 볶는다. 밥을 볶을 때 밥알마다 열이 가해질 수 있도록 골고루 볶아줘야 한다. 이 때 밥은 약간 꼬들거리는 것이 좋다. 거의 볶아졌으면 마지막으로 준비한 계란을 넣고 센불에서 한바탕 볶아준다. 굴소스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동그란 그릇에 볶음밥을 담고 살짝 눌러준 뒤 예쁜 접시 중앙에 엎어서 새우 장식을 얹어냈다.

"뛰뛰뛰--띠띠띠--." 현관 비밀번호를 경망스럽게 누르며 뛰어들어오는 앙실이. 평소엔 별로 크지 않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땀과 기름 범벅이 된 내게 와락 달려들면서 한마디. "고마워, 그리고………, 매일 해줘잉." '으--윽, 이를 어쩌나…버릇 잘못 들이는 거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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