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금 대출 못 갚겠다" 미국 대학 졸업생의 '빚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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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겠다며 빚 탕감을 신청하는 대학 졸업생들이 미국에서 늘고 있다. 대학 측이 신입생을 모집하면서 졸업생 취업률 등을 부풀리는 허위광고를 했다는 이유다.

10일 한국금융연구원의 '미국의 학자금채무 면책신청 증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동안 미국 연방정부에 학자금채무 면책을 신청한 대학 졸업생은 약 7500명에 달한다. 이들이 탕감해달라고 신청한 학자금대출 금액은 1억6400만 달러(약 1964억원)에 달한다. 면책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졸업생은 남은 학자금 채무뿐 아니라 이미 납부한 상환액도 돌려받을 수 있다.

이들이 빚 탕감을 신청한 근거는 미국이 1994년 도입한 '학자금채무 면책제도'에 있다. 대학당국이 허위·과장광고로 신입생을 모집하면 연방정부가 졸업생의 학자금채무 상환의무를 면책해주도록 규정돼있다. 이 규정은 도입 뒤 20년 동안 면책신청이 단 5건(이중 3건만 면책결정)에 불과할 정도로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미국은 학자금채무를 면제 받는 요건이 다른 대출에 비해 까다로운 편이다. 학자금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하면 급여를 차압 당하는 등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

유명무실했던 학자금채무 면책제도는 2014년 코린시안 칼리지(지난해 5월 파산) 졸업생 15명이 학교의 부실과 위법행위를 이유로 학자금 대출 상환을 거부하는 운동을 벌이면서 주목을 끌게 됐다. 미국 내 97개 캠퍼스를 운영 중이던 코린시안 칼리지는 경영난에 시달렸고, 학교 측이 대출금 상환을 압박하자 학생들이 대출금 탕감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운동은 급속히 확산돼 코린시안 칼리지뿐 아니라 다른 대학으로도 확산됐다. 지난해 하반기 빚 탕감을 신청한 7500명 중 70%는 코린시안 칼리지 소속 대학 출신, 30%는 다른 대학 졸업생이었다. 코린시안 칼리지 소속 대학의 졸업생 중 약 1300명은 이미 학자금채무를 면책 받았다. 신입생 모집시 대학 측이 학점이전제도, 직업교육인정제도, 졸업자의 취업률과 급여수준 등을 사실과 다르게 부풀리거나 허위로 광고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학자금채무 면책조항이 재조명된 것은 미국 대학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이 최근 수년간 급증한 탓이기도 하다. 지난해 3분기말 미국의 학자금채무 잔액은 1조2000만 달러(약 1437조원)를 기록했다. 2007년 말과 비교하면 2배로 늘어난 것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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