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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찾는 ‘러시아의 심장’ 음악 축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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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호 27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연된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AP]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에 구소련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만들었던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4년에 한번 개최되는 음악 올림픽이다. 최근 우리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각각 쾌거를 이룬 폴란드의 쇼팽 국제 콩쿠르,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콩쿠르’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세 콩쿠르 중에서도 피아노 부문만 열리는 쇼팽 콩쿠르를 월드컵에, 피아노·바이올린·성악·작곡 부문을 각기 다른 해에 실시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세계선수권에 비교할 수 있다면 피아노·바이올린·첼로·성악 네 부문이 한꺼번에 개최되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가장 올림픽스러운 ‘한마당 축제’ 형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두 콩쿠르보다 몇십년 늦게 시작했지만 거대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콩쿠르는 빠르게 성장했다.


사실 나야말로 어릴 적부터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선망하며 자라온 전형적인 차이콥스키 콩쿠르 키즈였다. 물론 세계 음악계에 대한 정보라고는 국내 음악잡지 한두권을 꼬박꼬박 읽는 것이 다였던 강원도 꼬마에게는 너무 큰 꿈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러시안 스쿨’의 교재들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나는 몇 년 후 62년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2위 수상자였던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 인쳉종을 만나며 이 콩쿠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키우기 시작했다.


환상이 처음으로 현실에 한 발짝 다가왔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97년도. 배우고 있던 스승님의 권유로 마지못해 참가했던 청소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상상도 못했던 입상을 했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청소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에게 성인 콩쿠르의 예심을 면제해주는 혜택을 주고 있었다. 꿈의 무대가 언젠가는 참가라도 해볼 수 있는 반현실의 무대가 된 순간이었다.


헌데 막상 내가 규모있는 국제 콩쿠르에 진짜로 도전할 수 있는 때가 왔을 때,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찬란하게 빛나던 명성을 급속도로 잃어가고 있었다. 소련 체제 붕괴 이후 지속적으로 재정난에 허덕여오다 언젠가부터는 로비가 횡행하고 돈이 오가는, 몰락한 사회주의 체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실력있는 친구들은 더이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나가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그 무대를 꿈에 품어온 나조차 아무런 흥미도 못 느끼는 곳이 되자 차이콥스키마저, 다른 몇몇 콩쿠르들이 그랬던 것처럼 초반의 영광을 지켜내지 못한 그저 그런 콩쿠르가 되어버리나보다 생각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러시아를 과소평가했다.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인사말을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하지만 러시아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먹을 것 없이는 살아도 문화적 자부심에 금가는 건 결코 참을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나라. 그들 중 직접 심폐소생술에 나선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었다. 국민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총감독 하에 화려한 면면의 심사위원단, 최첨단 채점 시스템, 인터넷 생중계, 입상자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등을 내건 콩쿠르는 2011년 다시 한번 부활했다.


게르기예프 체제의 원년을 성공적으로 치른 콩쿠르는 작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도시에서 또 한번의 큰 성공을 거뒀다. 콩쿠르가 모두 끝나는 바로 다음날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나는 며칠 일찍 모스크바에 도착해 피아노와 바이올린 결선을 구경했다. 피아노 결선이 열리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대극장(볼쇼이잘)안은 앉은 사람보다 선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며칠전, 어쩌다 2년 전에 놓쳐버리고만 소치 동계올림픽의 개막식 영상을 유튜브로 시청했다. 알렉산더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왕자’에 나오는 ‘폴로베츠인의 춤’으로 시작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으로 이어지는 개막식의 끝에는 역시 러시아의 심장, 차이콥스키가 있었다. 전 세계로 울려퍼진 ‘백조의 호수’를 그가 들었다면, 그는 웃을까 울까.


국민적 감성을 충실히 전달하지 못하는 서구 음악 추종자라며 따돌림받았던 그의 생은 결국 석연치 않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조국 때문에 늘 편치 못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음악 없이 지금의 러시아는 없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콩쿠르의 최신판 입상자들이 이달 마지막 주에 다음 동계올림픽 개최지 평창에서 갈라콘서트를 연다. 며칠전 열린 쇼팽 콩쿠르의 갈라콘서트가 콩쿠르 무대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형식이었다면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갈라콘서트는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따로 또 같이 연주하며 ‘한마당 축제’를 만든다. 공연의 매무새에서부터 콩쿠르의 특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참이다.


반세기 동안 자국에서 상위입상자의 반 이상을 배출하며 안으로 굽는 팔로 악명이 높았던 콩쿠르지만 이번 무대에 오르는 이들 중에는 러시아 출신 연주자가 없다. 러시아음악을 제것보다 더 잘 소화하는 다국적의 연주자들이 있을 뿐.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작고 작은 내 고향 강원도에서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갈라콘서트가 열리니 말이다.


손열음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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