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 볼 만한 책들] 오냐 오냐 하며 키우는 게 좋은 부모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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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다비드 에버하르드 지음
권루시안 옮김, 진선북스
336쪽, 1만4800원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의 부제는 ‘정신의학자이자 여섯 아이의 아버지가 말하는 스웨덴 육아의 진실’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와 해법에는 전 세계적인 적용성이 있다. 읽다 보니 우리나라 얘기다.

근대화 이전의 모든 문명에서 가정 교육이 엄했다. 엄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있었다’. 저자는 현재 스웨덴에는 가정 교육이 ‘없다’고 주장한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친애(親愛·친밀히 사랑함)를 넘어 부모와 자식은 그야말로 친구가 됐다. 미드에서 보듯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지미’ ‘샘’하며 이름을 부른다. 부모가 자식을 훈육하는 게 아니라 자식 눈치를 본다.

저자가 그리는 스웨덴 가정의 실상은 이렇다. 애들이 제왕이다. 최고결정자다. TV채널 선택권을 쥐고 있다. 외식 장소, 휴가 갈 곳을 정하는 것도 아이들이다. 언제 잠자리에 들 것인지도 아이들 스스로 결정한다. 부모의 명령이 사라졌다. 부모는 자식과 사소한 일까지 설득하고 ‘협상’해야 한다. 밖에 나가면 버릇도 없고 예절도 없다. 노약자·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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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유난히 연약한 인간이 아니다. 꾸지람과 질책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다. [사진 진선북스]

저자는 스웨덴 사람들이 아이들을 오냐 오냐 하며 키우게 된 원인이 ‘자녀 중심주의’라고 본다. 스웨덴은 1960년대부터 육아의 중심이 부모에서 아이들로 이동했다. 자녀 중심주의에는 두 가지 서로 충돌하는 가정에 내재돼 있다. 첫째, 어린이에게는 어른 못지 않은 능력(competence)이 있다. 능력이 있으니 부모 간섭 없이 어린이도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다. 둘째, 어린이는 연약하기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사소한 잔소리나 꾸중에도 크게 상처받고 잘못될 수 있다.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도 없고, 한다면 애가 잘못될 수 있다. 결과는?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어른이’의 양산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안 돼’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사회에 나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쩔 줄 모른다. 갈등이나 어려움을 극복할 능력이 없다. 어렸을 때 키울 수 있었던 능력이다. 스웨덴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불안 장애나 자해(自害) 사례가 많으며, 학업성취도도 낮아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학교에 규율이 살아 있는 핀란드를 부러워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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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에버하르드

저자는 과학을 중시한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념적’ 육아 이론을 내놓는 교육전문가들을 불신한다. 그는 전통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만약 인류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 틀렸다면 지금 인류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 전통적인 ‘권위주의적’인 육아 방식이 틀렸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가정 생활의 원리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저자가 애들을 때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당연히 부모는 명령 이전에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권위의 복원이다. ‘권위주의는 나쁘고 권위는 좋다’를 넘어 ‘권위도 나쁘다’는 관념이 스웨덴 교육을 지배하고 있다.

부모가 ‘절친’이 아니라 부모로 되돌아가는 법을 저자는 이렇게 제시한다. 첫째, 절대 아이와 타협하지 마라. 둘째, 더 이상 아이에게 끌려 다니지 말라. 셋째,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마라. 넷째, 육아 전문가를 믿지 마라. (저자 또한 ‘육아 전문가’다. 맞는지 틀리는지는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하시라.)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의 결론은 이미 우리말 속에 있다. 엄친(嚴親)이 답이다. 어버이가 자녀들에게 엄하면서도 자녀들과 친한 존재가 되면 된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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