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참겠다 공매도…개미들‘계좌 이동’으로 역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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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투자자’들이 증권사가 다른 투자자에 주식을 빌려주는 대차거래에 단단히 뿔이 났다. 이런 대차거래는 주식을 빌려다 파는 ‘공(空) 매도’로 이어지고, 공매도는 주가 하락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식 빌려 파는 기관 탓 주가 타격
대차거래 없는 증권사로 속속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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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대장주인 셀트리온의 소액 주주들은 최근 들어 주식 대차거래를 하지 않는 KB·LIG·유진투자증권 등으로 거래계좌를 옮기고 있다. KB투자증권으로 이관된 셀트리온 주식은 올 들어서만 232만7000여주다. 3일 종가(11만9900원) 기준으로 2790억여원 어치다.

대차거래는 수수료를 받고 주식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개인 투자자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개인 대차 물량을 국내·외 기관투자자 등 ‘큰 손’들이 빌려서 공매도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공매도는 말 그대로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을 말한다. 공매도의 기본이 되는 대차거래의 잔액, 즉 빌렸다가 아직 갚지 않은 주식의 잔액은 2012년 4분기 26조원대에서 지난해 말엔 42조원으로 늘어났다.

개인 투자자들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은 사실상 공매도가 불가능하다. 기관은 증권사나 예탁결제원에서 주식을 저가에 장기간 빌릴 수 있지만, 개인은 증권사에서만 단기간 빌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수수료 몇 푼 받자고 기관에 주식을 빌려줬다가 주가가 하락해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게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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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 주주들이 먼저 들고 일어난 건 이 종목이 유난히 공매도 비중이 큰 주식이라서다. 이 종목은 올 들어 2일까지의 누적 공매도 대금이 3890억원으로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2013년 “공매도 세력과의 싸움에 질렸다. 보유주식을 다 팔아버리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을 정도다.

한 개인 투자자는 증권정보 사이트에 “주식을 빌려주는 것은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자신의 주식가치를 떨어뜨리는 자살 행위다. 대차거래를 하지 않는 증권사로 계좌를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K하이닉스·호텔신라·바이로메드·젬백스 등의 개인 주주들도 계좌이관 운동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투자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일부 증권사가 대차거래 약정을 맺지 않은 개인의 주식을 마음대로 큰 손들에게 빌려주는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업계는 불법 행위는 없다고 반박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매도에 사용되는 대차 주식의 대부분은 기관이나 펀드 등이 빌려준 것이고 개인 대차 물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차거래 약정을 맺은 투자자의 주식만 빌려줄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비약정 주식을 불법적으로 빌려주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박진석 기자

◆공매도=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을 말한다. 주가가 향후 하락할 것으로 예상해 주식을 빌려서 먼저 내다 팔고, 실제로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주식을 매입해 되갚는 형태다. 주가가 하락해야 차익을 챙기기 때문에 공매도 세력의 시세조종 의혹이 자주 제기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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