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곽희주 "수원삼성 우승도전? 문제 없다 전해~라"

중앙일보

입력

올 시즌 프로축구 수원 삼성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전북, 서울, 울산 등 경쟁팀들과 견줘 전력 보강이 부족했던 만큼, 올 시즌 우승권에서 경쟁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솔직담백한 선수단 내부 분위기를 듣고 싶어 수원을 대표하는 두 베테랑을 2일 스페인 마르베야 전지훈련 캠프에서 만났다. 세 시즌 연속 캡틴으로 선임된 선수단의 기둥 염기훈(33), 그리고 소속팀을 "첫사랑이자 끝사랑"이라 표현한 레전드 플레이어 곽희주(35). 수원 팬들이 각각 '주장(염기훈)'과 '대장(곽희주)'이라 부르며 응원하는 선수들이다.

두 선수 모두 우려보다는 기대감이 큰 듯했다. "전북과 서울, 울산이 스쿼드를 보강하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동계훈련을 시작하기 전엔 살짝 걱정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새로운 후배들과 손발을 맞춰가는 동안 '지난해보다 재미있는 시즌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우승 경쟁자들이 적극적으로 전력을 보강했고 연고지 수원에 '시끄러운 이웃(수원 FC)'이 등장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수원 삼성의 가장 큰 경쟁자는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 스페인에서 불신을 극복하다

새 시즌 전망이 어두울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가 많은데.
염기훈(이하 염) "새 시즌을 준비하며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다. 지난달 4일에 선수단이 처음 소집했는데, 기존 선수들이 빠진 빈 자리가 대부분 신인 선수들로 채워졌으니 걱정할 만했다. 1차 전지훈련을 진행한 남해에서 '이젠 상위 스플릿 잔류를 목표로 삼아야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스페인에 와서 생각이 달라졌다. 전북이 엄청나게 전력을 보강했지만, 우리도 2~3위권 정도는 가능하리라 본다. 새로 들어온 후배들이 놀라울 정도로 볼을 잘 찬다. 팬들이 걱정하는만큼 수원 삼성이 나쁜 상황은 아니다."

곽희주(이하 곽) "나 또한 1월에는 '새 시즌엔 힘들겠다'는 걱정을 했지만, 이제 선수 구성이 꽤 많이 바뀌었다. 스페인에 와서 연습경기를 하며 진심으로 놀랐다. 신인들도 자기 역할들을 잘 해준다. 지난달 31일 허베이 종지(중국)와의 평가전(수원 4-0승)에는 전반에 매탄고 출신 신인 7명이 뛰었는데 두 골을 넣고 2-0으로 앞선 채 마쳤다. 경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베스트 멤버가 나선 후반보다 전반이 나았다."

:"허베이 선수들이 제대로 경기를 못 할 정도였다. 상대 공격수로 선발 출장한 에두가 전반 내내 제대로 볼을 받지 못하자 화를 내더라. 볼 점유율은 7대3 이상이었던 것 같다."

팀 구성원의 변화가 큰 만큼 고참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베테랑들이 말과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근래 들어 매 시즌 '위기'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수원이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는 원동력은 수원 삼성의 핏 속에 흐르는 DNA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팬들의 뜨거운 응원은 오직 우리만 누릴 수 있는 경쟁력이다."
"기존 선수들의 공백이 있지만 주요 포지션마다 베테랑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긴장감 높은 빅매치가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작년에도 전북전이나 수퍼매치에는 신인급 선수들이 움츠러드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선배들이 솔선수범하면 신인들도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경험 부족은 분명히 약점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경험 있는 선배들이 있고, 열심히 뛰어줄 후배들이 있다. 다른 팀을 의식하기보다는 우리의 장점을 잘 살리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탄의 아이들', 수원을 바꾼다

선수단이 젊어지면서 팀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후배들이 우리 때와 달리 자신감이 넘친다. 내가 신인 때는 여러 선배들에에 욕 많이 먹으면서 뛰었다.(웃음) 요즘엔 경기장 안에서 선·후배 간 위계질서를 앞세우는 장면은 사라진 것 같다. 감독님도 그런 모습을 없애려 노력하신다."

"내가 신인일 때는 수원에 기 센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워낙에 스타가 넘쳐나던 시기라 신인들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올해는 주장 기훈이가 유연하게 잘 이끌고 있어서 신인들도 표정이 밝다."

"사실 운동선수 사이에서는 선·후배 질서가 또렷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가운데서도 지킬 것은 지켜달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약속시간이라던지, 훈련할 때 불필요한 거친 플레이를 자제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선·후배가 친하게 지내는 건 좋지만 도를 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 또한 후배들의 사생활은 절대 터치하지 않는다. 프로니까. 하지만 운동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다. 훈련장에서 후배가 술냄새를 풍기더라도 자기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면 문제삼지 않는다는 게 내 원칙이다. 프로 선수의 자기 관리는 철저히 스스로의 몫이다."

후배들 중에서 주목하는 선수가 있나.
"신인들 중에서 공격수 김건희가 사고를 칠 것 같다. 장신이면서 스피드도 갖췄다. 같이 뛰어 보니 굉장히 저돌적인 친구고, 전방에서 등지는 플레이도 잘 한다. 팀 입장에서도 최전방 공격수가 터져줘야 경기를 풀어가기가 쉬운데, 건희가 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올 시즌 수원 등록선수 37명 중 절반이 조금 안 되는 14명이 매탄고(수원 삼성 유스팀) 출신이다. 이 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매탄고 출신으로 처음 프로에 데뷔한 수비수 민상기 별명이 '매통령(매탄의 대통령)'이다. 상기가 유스팀 출신 선수들을 잘 이끌어주고 있어 기대된다."

"수원 FC에서 임대를 마치고 복귀한 김종우도 '물건'이다. 볼 차는 것을 보면 감탄스럽다. 세트피스 키커로도 좋은 재목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젊은 선수들 중에 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많다."

◇'시끄러운 이웃'도 환영한다

새 시즌을 전망한다면
"우리 팀에 대한 외부 시선이 그리 긍정적인 것 같진 않지만, 축구는 아무도 모른다. 신인들이 한꺼번에 터지면 대단한 시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팬들께 한 번 지켜봐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희주 형이 2008년에 수원이 K리그 우승할 당시에도 주축 멤버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도 같은 흐름을 기대하고 있다."

"예전엔 후배들은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존재였는데, 이제는 신인들도 자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한다. 지난해와도 또 달라졌다."
염 "베스트 11만 놓고 보면 수원 또한 어느 팀에도 뒤질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전북은 정말 위협적인 팀이라고 생각하지만, 서울이나 울산은 붙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곽 "전북이 위협적인 팀이 돼서 아마 우리를 얕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어린 선수들이 준비한 걸 잘 보여주면 정신력 차원에서는 오히려 전북이 더 흔들릴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은 잃을 게 없다."

새 시즌을 전망한다면
"우리 팀에 대한 외부 시선이 그리 긍정적인 것 같진 않지만, 축구는 아무도 모른다. 신인들이 한꺼번에 터지면 대단한 시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팬들께 한 번 지켜봐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희주 형이 2008년에 수원이 K리그 우승할 당시에도 주축 멤버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도 같은 흐름을 기대하고 있다."

"예전엔 후배들은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존재였는데, 이제는 신인들도 자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한다. 지난해와도 또 달라졌다."

"베스트 11만 놓고 보면 수원 또한 어느 팀에도 뒤질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전북은 정말 위협적인 팀이라고 생각하지만, 서울이나 울산은 붙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전북이 위협적인 팀이 돼서 아마 우리를 얕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어린 선수들이 준비한 걸 잘 보여주면 정신력 차원에서는 오히려 전북이 더 흔들릴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은 잃을 게 없다."

올 시즌부터는 '수원 더비'도 열리는데
"솔직히 큰 부담이다. 상대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나설텐데, 우리 입장에서는 못 이기면 부담 아닌가. K리그 전체로 본다면 흥행에 도움이 될 기회겠지만, 우리 선수들에겐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수원은 예전부터 온갖 라이벌전으로 얽힌 팀이다. 올 시즌에 '시끄러운 이웃'이 하나 더 생겼다. 선수단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2~3일씩 자발적으로 클럽하우스에서 합숙을 하는데, 올해는 가족과 떨어질 시간이 늘지도 모르겠다(웃음)."

마르베야(스페인)=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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