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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의원이 신뢰 얻는 길, 표준진료체계 구축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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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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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식 대한한방병원협회장

지난해 손금으로 병을 진단한다는 이유로 한의원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진단의학 시장은 날로 과학화되고 있는데 손금으로 병의 경중을 파악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의료행위라는 지적이 거셌다. 그런 비판이 나오자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도 선을 그었다. 손금으로 질병을 진단하는 것은 일부 개인의 주장에 불과할 뿐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한의 의료에 포함된 행위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정부의 3차 한의약 발전계획 핵심은
범용적 임상진료체계 개발과 보급
한방 실손보험도 일부 가능 계기로
한의계 공조와 신뢰 회복 노력 절실

한의에 대한 불신 사례는 또 있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의사가 한의원을 찾은 환자에게 쌍둥이가 들어서는 달이 1년에 한 번밖에 없다며 고가의 한약을 권하는 모습이 방영돼 논란이 된 것이다. 이에 한의협은 해당 원장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아울러 한의계 전반의 신뢰와 명예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면허취소 조치 등 강력히 제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의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가운데 정부는 최근 한의약 육성 발전 심의위원회를 열고 ‘제3차 한의약 육성 발전 종합계획’을 최종 확정·발표했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보급을 통한 근거 강화와 신뢰도 제고 ▶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 확대를 통한 한의약 접근성 제고 ▶기술 혁신과 융합을 통한 한의약산업 육성 ▶선진 인프라 구축과 국제경쟁력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한의약을 통해 국민의 건강 관리를 다변화하고 국가 의료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이번 3차 계획안에는 핵심 목표 사업으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이 제시됐다. 표준화되지 않은 한의 치료에 대한 대국민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한의사들마다 질환에 따른 진단과 치료법에 차이가 있어 환자들이 혼란스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한방 진료의 불만족요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표준화되지 않은 한의 진료나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일부 한의 의료행위는 한의약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보급을 통해 한의약 관련 근거를 강화하고 표준화하는 것을 종합계획의 목표로 삼은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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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표준화되지 않은 한의 진료는 한의학 관련 치료의 보장성 약화로 이어져 왔다. 2014년 기준 한국의 의·치·한의사 총 15만8000명 중 한의사는 2만1000명(14%)에 달했지만 국민건강보험 진료비 비중은 전체의 4.17%에 불과했다. 한의약 관련 치료 중 상당 부분이 비급여여서 국민의 부담이 컸고 의료 선택권 또한 제한됐다. 실제로 민간의료보험은 가입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섰지만 한의약은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민간의료보험조차 한의약을 그 대상에서 제외시키니 어찌 보면 한의약이 환자의 선택권에서 밀려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한방 치료에 대한 실손보험 적용이 일부 가능해졌다. 한방병원협회를 비롯한 한의계 모두가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한의약 관련 진료지침이 개발된다면 그에 따른 표준치료를 시행해 치료의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비급여 진료는 실손보험 적용이 용이해져 한의약이 국민 건강 증진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은 한의약 근거 확립에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다. 최근 보건정책은 모두 임상 결과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수립되고 있다. 하지만 한의약 관련 임상 연구는 연구 디자인이 다양하고 충분한 기반이 누적되지 않아 정책 수립에 늘 어려움을 겪어 온 게 사실이다. 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과 이를 위한 근거 창출 임상 연구가 활발하게 시행된다면 근거 확립뿐만 아니라 한의약 정책 수립에도 큰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최근 세계 보완 대체의학 시장 규모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연평균 6%씩 성장해 2020년에는 1542억7400만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3차 한의약 육성 발전 종합계획을 통해 다양한 한약 제제를 개발한다면 국내 산업 활성화는 물론 새 해외 시장 개척으로 국익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작업은 한방의 세계화를 위한 주춧돌이 될 것이고, 한의학 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계획에 그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실행돼야 한다. 한의학의 질적 향상과 치료의학으로서 신뢰 회복을 위해 정부는 ‘표준임상진료지침 정보센터’를 설치하고 지침의 보급·확산과 관리·갱신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의계의 노력은 더 절실하다. 앞으로 개발될 지침을 바탕으로 어느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에서나 표준화된 한의 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의계의 신뢰 회복과 끊임없는 의료 혁신, 원활한 공조체계 구축이 절대 중요하다. 이런 자발적인 변화의 토대 위에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이 더해진다면 우리나라 한의의 경쟁력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신준식 대한한방병원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