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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딛고 ‘헌신’에 이른 그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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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31면

1939년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마쳤다. 중앙일보 공채 1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기자로 활동하다 기업으로 적(籍)을 옮겨 삼성물산 해외본부장을 지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새너제이에 정착한 후 ‘에이스컴’이란 컴퓨터 회사를 운영하여 크게 성공했다. 재미 사업가 김종수 씨의 얘기다. 기독교 신앙인인 그는 ‘회장’이라는 호칭보다 ‘장로’로 불리기를 원한다. 김종수 장로의 성공 스토리에는 거의 모든 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이 가진 성공 패턴이 그대로 구비돼 있다.


비상한 노력으로 온갖 역경을 이기고 큰 성취를 이루었는데,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을 맞아 그것을 극복하면서 그때까지의 자기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놀라운 헌신의 길로 들어선다. 이 방정식에서 최후의 ‘헌신’에 이르지 못하면, 고난도 승리도 별반 빛이 나지 않는다. 김 장로의 ‘위기’는 위암 진단이었다. 그는 암 선고를 받고 병을 치료하면서 스스로의 인생관을 바꾸었다. 기독교 박애주의를 실천하는 해외선교와 기독교적 사랑의 의미를 성경 인물을 통해 구명(究明)하는 저술에 인생의 초점을 맞췄다. 중국의 한 지역에 의료복지재단을 운영하면서 현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그런가 하면 이제껏 네 차례에 걸쳐 펴낸 성경 해석의 저술들은 유려한 문장과 치밀한 고증을 동반한 현대적 시각의 새 국면을 열어 보인다, 지난해 나온 그의 네 번째 저서 『물 위를 걷는 어부』는 사도 베드로의 얘기였다. 다음에 나올 저서는 사도 바울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김 장로와 같은 실천적 사랑이 있고서야 그 빛이 밝을 터이다. 그는 생명의 위기를 넘는 순간에 여생을 두고 모든 열정을 불사를 ‘블루오션’을 개척한 셈이다. 나누고 섬기는 삶의 수범(垂範)이 되는 한국인 인간승리의 개가(凱歌)는, 그것을 듣는 일 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 또 한 사람, 기막힌 성공과 눈물겨운 헌신의 범례를 보여주는 재미 사업가가 있다. 저명한 건축가이자 주차빌딩의 혁신으로 널리 알려진 하형록 회장이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부산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13년간 한센병 환자촌에서 목회하던 분이었다. 그 과정을 눈여겨 본 한 미국 선교사가 이 가족에게 미국행을 주선해 주었다. 대학을 마친 후 건축회사에 들어가 승승장구했고, 29세에 부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의 ‘위기’는 바이러스로 인한 심장병이었다. 심장이식을 받아 겨우 생명을 건졌다. 덤으로 사는 인생을 얻는 그는 자신의 야망을 앞세우던 삶을 버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선한 목표가 이끄는 삶은 놀라운 축복이었다.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한 ‘팀하스’라는 이름의 건축설계회사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기업이 되었다. 이 회사는 필라델피아와 그 일대에 1000여 개의 주차빌딩을 지었다. 어찌 보면 기능이 뻔한 주차 공간에 예술적 디자인을 접목하고 조망권을 중시하며 차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구현했다. 건축 계획에서 완공 이후까지 감동적인 애프터서비스 제도를 만들었다. 그의 주차 건물에서는 수시로 결혼식이나 콘서트가 열린다. 그의 기업은 펜실베이니아에서 청년들이 가장 가고싶어 하는 회사로 뽑혔다. 하 회장은 현재 오바마 정부의 건축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그의 회사 사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존재’이다. 그의 마지막 꿈은 ‘인종과 남녀노소를 넘어 모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가장 큰 부자이면서 가장 많은 자선의 기록을 남긴 록펠러도, 그의 생애 중반에 불치병 진단으로 1년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그 이후 모든 세상 욕심을 내려놓고 자선의 실천에 목표를 두었더니, 43년의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한 마음으로 온 몸을 채우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가기는 어렵다. 김종수와 하형록, 두 재미사업가의 삶은 위기의 자리에서 양선(養善)의 블루오션을 발굴한 눈부신 사례다.


김종회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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