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 ‘터부’ 깨는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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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은 28일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비대위?선대위원들과 함께 국립현충원을 찾아 분향했다. 김 위원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김대중·김영삼·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역도 참배했다. 김 위원장 뒤는 박영선 비대위원. [뉴시스]

“당연히 참배해야죠.”

김종인, 선대위원들 15명과 동행
작년 문재인 ‘나홀로 참배’와 대조
“여야의 스펙트럼 넓어졌기 때문”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8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도 참배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비대위원장으로의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현충탑에 분향한 뒤 방명록엔 ‘국민 모두 더불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김대중(DJ)·김영삼(YS)·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순으로 참배했다. 박영선·변재일·우윤근·이용섭·김병관 비대위원을 비롯해 선대위원들까지 15명이 동행했다.

야권 인사들은 과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 참배를 금기시해 왔다.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해 2월 당 대표로 선출된 뒤 이들 묘역을 참배했을 때도 최고위원들은 전원 불참했다. 당내에선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국민의당 김한길 의원은 창당발기인대회를 마친 다음 날인 지난 11일 안철수 의원 등과 함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민주당 대표에 취임한 후에도 참배하려고 했지만 최고위원 전원이 반대해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김 위원장의 참배엔 새 지도부가 대부분 동행해 과거와 양상이 달라졌다. 일단 더민주-국민의당 지도부가 야권의 ‘터부(taboo)’ 하나를 깬 것이란 말이 나왔다. 총선을 앞두고 진영의 벽을 넘어서는 영입이 일어나는 바람에 완충효과가 난 측면이 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측 캠프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지내며 공약 개발을 총괄했다.

김 위원장의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기존 야권 인식과 달랐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강북구 수유동 4·19 묘역을 찾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여러 말이 많지만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내가 1977년 도입된 국민건강보험을 작업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렸는데, 모두 이해하지 못할 때 실시를 결심한 분이 박 전 대통령이다.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는 건강보험제도가 그로 인해 이룩됐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예전 언론 인터뷰에서 “75년 봄 서강대 교수 시절 청와대로부터 근로자 대책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외부인사 몇 명과 근로자 의료보험 도입을 포함한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경제부처 장관 등이 반대했으나 박 전 대통령이 결심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이승만 국부론’과 관련해선 부정적인 언급을 했다. “(이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3선 개헌과 부정선거로 파괴해 불미스럽게 퇴진했으니 현실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다. 김 위원장은 이날 4·19 묘역 인근에 있는 조부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묘소도 개인적으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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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임혁백(정치학) 교수는 “여야 모두 스펙트럼을 넓게 추구하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 양상이 달라졌다”며 “이념 경쟁의 사회에선 (참배 문제에) 타협의 여지가 없었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이익 경쟁의 사회 분위기라면 타협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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