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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괴롭힌 소갈증 뱃살 빼고 운동해야 피하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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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25면

췌장은 위의 뒤쪽에 위치해 있고, 십이지장으로 인슐린 등의 호르몬을 내보낸다.

필자의 건강진단서에 노란불이 켜졌다. 공복혈당이 정상을 벗어났다. 검사 전날 늦게 먹은 과일 때문인가 했지만 3개월 혈당 평균치도 경계를 넘었다. 특별한 증세도 없이 혈당이 나도 모르는 사이 올라가 버린 것이다. 의사는 ‘전단계 당뇨’이니 조심하라 한다. 지금대로 생활하면 10년 내 당뇨환자가 되고 한번 당뇨가 되면 ‘완치’란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평생 ‘관리’하지 않으면 하지절단, 실명(失明) 등의 합병증이 생긴다 하니 정신이 바짝 든다. 필자 같은 전단계 당뇨는 국내 성인의 20%다. 여기에 이미 당뇨 진단을 받은 환자 10%를 더하면 10명 중 3명은 ‘당뇨 위험군’이다. 게다가 최근 젊은층의 당뇨도 늘고 있다. 국가적인 ‘당뇨 대란’을 의사들은 걱정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잘 모른다.


당뇨는 큰불이다. 초반에 제대로 대응해야 세간을 태우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당뇨를 예방·치료할 수 있을까?


2형 당뇨는 대사질환, 비만에서 시작의사가 필자에게 경고한 ‘전단계 당뇨’란 정상과 당뇨병의 중간이다. 즉 공복혈당이 100~125(단위:㎎/dL), 포도당 75g을 먹고 2시간 후의 혈당이 149~199, 3개월간 평균 혈당수치인 당화혈색소가 6.0~6.5인 경우다. 이 단계에서 철저히 예방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당뇨환자가 된다. 당뇨병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1형 당뇨는 몸이 췌장을 스스로 공격하는 ‘자가면역 이상’이나 선천적으로 췌장이 망가진 경우다. 인슐린을 못 만들기 때문에 주사로 공급해야 한다. 진단은 자가면역 여부를 검사한다. 50%가 40세 이전에 생긴다.


반면 2형 당뇨는 나이가 들거나 뚱뚱해지면서 생기는 일종의 대사질환이고, 잘 낫지 않아서 평생을 가는 만성질환이다. 이 경우 평생 약을 먹고 살아야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는다. 당뇨환자의 90%가 2형 당뇨다. 왜 2형 당뇨가 생기는 것일까.

당뇨병으로 소갈증을 앓다가 후에 실명까지 한 세종대왕.

당뇨는 인류와 함께한 오래 된 ‘귀족병’이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에 집중하느라 건강을 못 챙겼다. 운동 부족과 고기위주 식단으로 몸이 불었고 시력이 나빠져 실명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소갈(消渴)증이 생겨 하루에 마시는 물만 몇 동이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소갈증은 전형적인 당뇨증상이다.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의약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는 ‘뚱뚱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은 기름진 음식 때문에 질병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의 미라를 조사해보니 이 여왕도 당뇨병이 심했었다. 하지만 현대의 당뇨환자는 오히려 저소득층이 2배 많다. 먹을 것이 많아졌지만 패스트푸드와 저가의 고열량 음식을 주로 먹는 저소득층의 비만이 늘면서 이제 귀족과 서민을 구분하지 않는 ‘만인의 병’으로 변했다. 뚱뚱하면 당뇨가 되기 쉽다. 체질량지수(BMI; 체중(㎏)÷신장(m)2)가 25 이상인 복부비만이 2형 당뇨환자의 절반이다.


복부지방 탓에 인슐린에 둔감해져62세에 총기 자살로 숨진 노벨상 수상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90㎏이 넘는 비만이었다. 사망 오래 전부터 당뇨·고혈압을 앓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왜 뚱뚱한 사람이 당뇨에 걸리는 것일까. 원인은 복부지방 때문에 온 몸의 세포들이 인슐린에 둔감해지고, 비만으로 인한 염증이 인슐린 생산 공장인 췌장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최근 예일대의 연구도 당뇨 초기에 비만에 의한 염증으로 췌장이 망가짐을 보였다. 식사 후 혈액으로 흡수된 포도당은 췌장의 ‘베타 세포’를 자극해서 인슐린을 만든다. 인슐린은 몸 안의 대부분 세포에게 신호를 보내서 포도당을 들여가게 한다. 이때 남는 포도당은 비상시를 대비해서 지방·글리코겐 형태로 저장해 놓는다. 쓰는 양보다 먹는 에너지가 많아지면 뱃살, 즉 복부지방으로 축적된다. 2형 당뇨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인슐린이 있어도 몸의 세포들이 포도당을 섭취하지 않는 ‘인슐린 저항성(resistance)’이다. 배가 고파야 밥을 싹싹 비우는데 늘 먹을 것이 널렸으니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인슐린을 만들어내야 하는 췌장세포는 피곤해진다. 또 고열량 위주의 식사로 포도당이 롤러코스트처럼 급격히 오르내린다. ‘티코 엔진’을 달고 달리는 트럭처럼 췌장은 기진맥진해진다.


높아진 포도당으로 ‘다음(多飮)·다식(多食)·다뇨(多尿)’가 생긴다. 즉, 포도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태만’해지면 세포 내부로 포도당이 흡수가 안 돼 혈중 포도당이 높아진다. 그 결과 신장이 수분을 재흡수 못해서 소변량이 많아진다. 소변으로 많은 포도당이 빠져나가면 포도당과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허기와 갈증이 일어난다. 혈액에 당이 계속 높게 있으면 몸의 모든 장기들은 초비상이다. 모세혈관 구석구석 피가 잘 돌지 못하니 망막세포가 남아날 리 없다. 또 발가락에 피가 돌지 않아 썩는다. 하지절단의 60%, 고혈압의 67%, 콩팥이 망가진 경우의 44%가 모두 장기간 높은 포도당에 노출된 결과다. 이런 합병증은 돌이킬 수 없다. ‘당뇨(Diabete)’의 어원이 ‘사이펀으로 물을 빼가는 것’이고, ‘악마의 소변’이라고 불려왔던 이유다. 일단 당을 낮추도록 약과 주사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낮은 당지수의 음식과 운동이 최선수영 종목 10개의 올림픽 메달을 따낸 미국의 게리 홀은 1형 당뇨 환자였다. 당뇨검사기로 하루 8번씩이나 혈당을 체크하면서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다. 1형 당뇨환자는 인슐린을 많이 주사하면 저혈당이 생길수도 있으므로 늘 혈당을 체크해야 한다. 반면 2형 당뇨 치료법은 두 가지다. 즉 인슐린 생산 공장인 췌장의 베타 세포를 잘 유지하는 약을 먹는 방법과 1형 당뇨처럼 인슐린을 추가로 주사하는 방법이다. 먹는 당뇨약은 여러 종류다. 그중에는 도마뱀의 침에서 얻은 것도 있다.


덩치가 60㎝나 되는 ‘길라몬스터’ 도마뱀은 일 년에 3~4번 정도밖에 식사를 안 한다. 대신 한 번에 먹는 양이 엄청나서 몸무게의 3분의 1정도까지 먹는다. 성인이 쌀 20㎏를 한 번에 먹는 것과 같다. 그러고도 잘 소화시킨다. 침속의 특별한 물질이 혈중 포도당을 잘 조절할 것이라는 생각이 ‘GLP-1’이라는 물질을 찾아내게 했다. 이 물질을 포함해서 베타세포를 나빠지지 않게 하는 약들이 주로 입으로 먹는 당뇨약이다. 당뇨 초기에는 주로 이런 계통의 약으로 2형 당뇨를 치료하다가 잘 안 듣는 경우, 인슐린 주사도 같이 사용한다.


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28~44%만이 혈당 조절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근본적으로 췌장이 건강해지지 않고 약·주사로만 혈당을 조절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론 다른 방법들도 시도 중이다. 췌장을 이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최근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은 배아줄기세포를 췌장의 베타세포로 분화시켜 쥐에 이식 결과 2형 당뇨에도 효과가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실제 인간 적용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이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다이어트, 즉 체중감량이다.


미 당뇨협회에 의하면 체중의 5%, 즉 60㎏인 경우 3㎏을 줄인 상태를 3년 지속하면 58%가 2형 당뇨를 예방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전단계 당뇨와 나이 든 사람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물론 탄수화물, 즉 열량은 줄이고 다른 영양소는 챙기는 현명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포도당을 쉽게 만드는 단순당, 예를 들면 흰 빵보다는 현미를 택해야 한다. 그래야 췌장을 높은 포도당으로 자극하지 않는다. 더불어 운동이 가장 중요하다. 운동은 남는 포도당을 소비시켜 비만이 되지 않게 하고 세포들이 인슐린 신호를 잘 따르도록 한다. 즉 2형 당뇨의 가장 큰 어려움인 ‘인슐린 저항성’을 낮춘다. 더불어 췌장의 베타세포를 정상으로 만드는 효과도 있으니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하루 30분내지 1시간, 조금 빠른 걷기 정도가 적당하다.

쥐의 췌장섬. 췌장의 4%에 해당한다. (적색은 인슐린, 청색은 인슐린 생산 베타세포)

증상 나타나면 늦으니 미리 검사를지난해 저명학술지 ‘셀(Cell)’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인슐린 조절은 단지 췌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몸은 오케스트라처럼 모든 장기·세포들이 관여하는 아주 복잡한 시스템이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혈중의 포도당 농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반응도 각각 다르다. 그래서 같은 종류의 식사를 해도 누구는 혈당이 금방 오르고 누구는 안 오른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연구팀은 800명의 4만6898번의 식후 혈당과 개인특성(혈액성분·식사 종류·식사 습관·체형·장내세균종류) 관계를 조사해서 혈당 예측식을 만들었다. 또 이들 관계를 바탕으로 임의의 100명에게 각자의 개인특성에 맞는 처방을 했더니 혈당 조절이 훨씬 잘 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즉 당뇨병은 개인특성이 있으므로 이를 조사해서 개인처방(음식·운동)하면 훨씬 효과적이란 것이다.

[삽화 박정주]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늦다. 주기적으로 간단한 혈액검사를 하자. 일이 커지기 전에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인슐린을 최초로 발견한 공로로 32세에 노벨상을 받은 캐나다 프레드릭 반팅 박사는 ‘인슐린은 당뇨를 치료하는 약이 아니다. 단지 임시로 막아주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2형 당뇨는 많은 식사, 적은 운동이 원인이다. 너무 잘 먹어서 생기는 당뇨병이야말로 자기절제와 인내의 수양이 필요한 병이다. 소식과 생활 속 운동, 이것은 세계 장수촌의 공통점이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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