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선진화법, 19대 국회가 책임지고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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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당이 발의한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길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어제 “여당 단독 국회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며 본회의 개최와 표결 처리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현행 선진화법에 따르면 다툼이 있는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기 위해선 재적 의원이나 상임위 의석의 5분의 3이 동의해야 한다.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도 천재지변, 국가비상사태, 여야 합의란 세 가지로 제한돼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직권상정 요건에 ‘재적의원 과반수가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때’를 추가했다. 여야 간 합의가 없어도 과반수가 요구하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다수결 원칙을 되살리겠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은 개정안을 본회의에 올릴 때 여야 합의를 건너뛰는 우회로를 동원했다. 자신들이 제출한 개정안을 상정하자마자 부결시키고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는 다른 국회법 조항을 이용한 것이다. 부의된 법안을 안건으로 선택해 표결에 부치는 건 국회의장 권한이다.

 앞서 정 의장은 여당 개정안의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한 바 있다. 그런 만큼 본회의에 자동 부의시키면 정 의장이 선선히 표결 처리에 나설 것으로 새누리당이 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편법까지 동원해 본회의에 올린 건 선진화법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보여 주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야당은 “선진화법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선진화법은 18대 국회 막바지인 2012년 5월 당시 여당이 주도해 통과시켰다. 여당 강행 처리와 소수 야당의 실력 저지 과정에서 전기톱에 해머까지 등장한 폭력과 몸싸움을 국회에서 사라지게 하자는 게 입법 취지다. 시행 결과 ‘동물국회’ 모습은 사라졌고 예산안이 비교적 무난하게 처리된 나름의 기여가 있었다.

 하지만 예견됐듯이 순기능보다 많은 부작용도 드러났다. 과반을 확보한 다수당이라 해도 소수당의 동의가 없으면 쟁점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거나 표결할 수 없는 ‘식물국회’가 19대 국회였다. 야당은 특정 법안과 전혀 상관없는 법안들을 연계해 함께 처리하는 행태까지 보였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지금 선거구 실종에 개혁 법안이 표류하는 입법비상 공화국이 됐다.

 동물국회로 회귀하는 게 바람직한 건 아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식물국회를 더 이상 방치해서도 안 된다.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물론 여야가 함께 가야 하는 길이다. 고의 부결이란 여당 꼼수도 문제지만 야당도 더 이상 국회의장 뒤에 숨지만 말고 당장 여당과 개정 협상에 나서야 한다. 다수결 원칙이란 민주주의를 살리는 방향이 기준선임은 물론이다. 5분의 3이란 특별 의결정족수를 모든 안건으로 확대해 보편적 의결 원칙으로 삼는 건 다수결 원리가 아니다. 선진화법은 18대 국회가 19대 국회에 남긴 유산이다. 20대 국회가 열리기 전까지 새 국회법을 만드는 건 19대 국회의 마지막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