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마다 임신 기준 제각각, 산모만 골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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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11월 회사원 백모(35)씨는 임신 8주 만에 유산의 고통을 겪었다. 수술과 몸조리 비용으로 60여만원이 들었다. 백씨는 그 돈을 고스란히 부담했다.

확인서 있어야 국민행복카드 줘
초기 유산 땐 지원금 못 받기도

반면 임신 7주 차에 유산한 윤모(32)씨는 치료비 대부분을 정부 지원금이 입금되는 ‘국민행복카드’로 지불했다.

백씨에게는 이 카드가 없었다.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임신확인서가 필요한데 병원에서 이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씨는 “유산 전 초음파로 아기집까지 확인했는데 병원에서 ‘심장 소리가 들려야 한다’며 확인서를 끊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신확인서 발급 기준이 분명치 않아 임신부들이 혼란과 불편을 겪고 있다.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지 못하는 불이익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 카드는 보건복지부가 임신부에게 아기 1명당 병원 진료비 등의 용도로 50만원(쌍둥이는 70만원)씩 제공하는 출산지원금 카드다.

 정부는 ‘임신이 확인된 후 확인서를 발급하라’고 병원에 지침을 내렸다. ‘임신 확인’의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초음파로 배 속에 아기집이 보일 때’ ‘심장 소리가 들릴 때’ ‘피검사 후 바로’ 등 병원이나 의사마다 제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아기집은 보통 임신 4주 차 때 보이고 심장 소리는 그로부터 최소 2주는 지나야 들을 수 있다. 결국 2주, 길게는 한 달 이상까지도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시점에 차이가 나게 된다. 특히 백씨처럼 임신 초기에 유산한 경우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직장 여성들도 모호한 기준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임신부를 위한 회사 복지제도를 이용하려면 임신확인서를 내야 하는데 다니는 병원에서 확인서 발급을 늦게 해 주면 손해를 보게 된다.

임신 6주 차 회사원 한모(31)씨는 “입덧이 심해 회사가 임신 12주까지 허용하는 근로시간 단축제를 이용하려 했는데 지금 다니는 산부인과의 기준이 유독 엄격해 아직 신청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신부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확인서 빨리 떼어 주는 병원 리스트’가 돌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임신을 진단하는 것은 의사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도 ‘임신 확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서유석 보험이사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정부가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야 혼란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홍상지·서효정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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