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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삼겹살과 철도는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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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삼겹살이 비싸지면 목살이나 갈비를 먹으면 어떤가. 사과값이 금값이 되면 배로 과일맛을 대신하고.

입맛을 고집하는 사람에겐 쉬운 일이 아니지만 현명한 소비자라면 당연한 선택이다. 정부나 시장의 선택도 있다. 외국에서 사오는 것이다. 예컨대 고추값이 크게 뛴다면 할 수 없이 수입을 늘려야 한다. 고추가 비싸다고 양파로 김치를 담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엇인가로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떤 한 가지의 값이 뛰다가도 오래지 않아 제자리로 돌아가고, 누군가가 틀어쥐고 횡포를 부리려 해도 잘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인가로 대신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바로 물류.교통 등 요즘 잇따라 파업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들이다.

지난 번 화물연대 파업 때 어느 장관은 "대체 가능하지 않은 것을 들고 나오니 참 어쩔 수가 없더라"며 개탄했다. 물류 대란 때문에 당장 수출이 끊기고 공장이 서게 되니 어쩔 수 없이 화물연대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최근의 파업이 물류.교통.금융 등의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 이유다. 다른 것으로 쉽게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국가경제 전체를 볼모로 잡을 수 있는 분야를 골라 파업을 하는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분야에선 농어민들이,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긴 해도 결국 어떤 선은 넘지 못한다. 그런데 물류나 교통.금융 등의 분야에서는 국민을, 국가경제를 볼모로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더러 원칙을 깨라고 몰아붙이다니.

만일 철도 노조와 입장이 다른 전국승객연합이나 전국화물주연대 같은 단체가 있어 노조와 대등한 협상력을 행사한다면 또 모른다.

그러나 승객들이 노조에 대항해 집단행동을 한다거나 화물주들이 다 함께 철도를 기피한다든가 하는 일은 앞으로도 벌어지지 않는다. 노조 구성원은 각자 하나를 들이면 그 이상이 돌아오지만 승객이나 화물주는 각자 하나를 들여도 돌아오는 것은 그 이하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사회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이익단체들의 집단행동은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정부가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다스리지 못하면 그 사회는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경제학은 이미 예전에 가르쳐줬다.

그렇다면 물류나 교통 분야에서의 파업 때마다 볼모로 잡힐 수밖에 없는 승객이나 화물주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것은 이번처럼 당장의 불편과 불이익을 꾹 참고 견뎌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돼지 파동이나 고추 파동이 날 때와는 다르다.

물류나 교통.금융이 볼모로 잡힐 때마다 힘들더라도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면 정부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고, 원칙이 매번 깨지면 결국 다같이 주저앉고 만다. 이번 철도 파업이 그나마 파국 직전에 가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일깨워 준다. 만일 "정부는 무얼 하는가"라고 다그쳤다면 철도 파업은 제대로 수습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철도 파업의 결과를 놓고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오늘 아침까지는 여전히 출근길이 힘들어도 노조원이든 승객이든 화물주든 정부든 모두 되새겨야 하는 한 가지는 왜 삼겹살과 철도는 달라야 하는가다.

김수길 기획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