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사기꾼 소리 들어 … 이젠 야구판 개척자 평가에 자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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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대표는 “처음엔 모두가 망할 거라고 했지만 우리는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한국 스포츠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을 때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30·미네소타) 포스팅 금액(약 150억원)이 며칠 전 입금됐습니다. 메인 스폰서인 넥센타이어 후원 금액도 두 배가 올랐습니다. 올해는 매출 500억원 달성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정영재의 필드에서 만난 사람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50) 대표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한때 ‘사기꾼’ 소리를 들었던 그는 지금 ‘프로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가’로 인정받는다. 다른 구단들은 모기업의 지원을 받는 것과 달리 2008년 창단한 히어로즈는 야구단 이름을 빌려주는 네이밍 마케팅 등 독특한 생존법으로 ‘남다른 길’을 걸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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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보고서 기준 히어로즈 매출액은 2012년 222억→2013년 230억→2014년 31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는 강정호(29·피츠버그) 포스팅 금액(약 50억원)을 포함해 350억원으로 뛰었다. 올해는 박병호가 안겨준 돈과 넥센타이어 후원금(약 100억원)을 합쳐 250억원을 안고 시작한다. 중계권료·입장수입·광고 등을 합쳐 매출 500억원을 올린다면 조심스럽게 흑자도 바라볼 수 있다. 지난 7일 목동야구장 근처 중식당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 박병호에 이어 자유계약선수(FA)인 마무리 손승락, 타자 유한준이 빠져나갔다.

 “유한준은 못 잡은 게 크다. 손승락은 잡으려고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했지만 롯데가 그 이상으로 베팅했다. 제안을 할 때마다 다른 구단이 높이고 하는 식의 경쟁은 하고 싶지 않았다.”

 - 프로야구에서 거품을 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까지 변화에 동참하고 있지 않나. 삼성의 체질개선을 속으로 많이 응원한다. 우리 같은 중소자립형 구단이 있는 반면 한화·롯데 등 반드시 우승을 해야겠다는 구단은 과감히 돈을 써야 한다. 10개 구단이 다 똑같으면 재미없다. 만약 한화가 우승을 한다면 또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 처음에는 이 대표 에 대한 인식이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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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마스코트 ‘턱돌이’

 “2008년엔 지구상에서 내가 가장 욕을 많이 먹는 것 같았다. (선수들을 다른 팀에 판다고) ‘개장석’이라는 말도 들었다. 2009년 한 언론에 히어로즈가 망한다고 기사가 나가자 거래처들이 돈 당장 내놓으라고 독촉을 했다. 갑자기 한 달에 50억원이 몰렸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 나갔더니 (다른 구단 대표들이) ‘이 사장, 잘해 봐’라며 비웃더라. 속으로 칼을 갈았다.”

 - 지금은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망할 거라고 하던 길을 헤쳐나왔다. 한국 스포츠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고, ‘개척자’라고 평가해 주신다. 자부심을 느끼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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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이 대표의 별명은 ‘빌리 장석’이다. 실화에 바탕한 미국 소설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 빈(메이저리그 오클랜드 당시 단장)처럼 첨단 기법으로 야구단을 운영한다고 해서 팬들이 붙여줬다. 빈처럼 이 대표도 데이터에 입각해 구단 운영을 하고 있다. 그의 야구 지식은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 머니볼을 보면 감독과 단장이 선수 기용을 놓고 갈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프런트(사무 조직)와 현장(야구단)의 생각이 일치할 순 없다. 중요한 건 서로 존중하는 거다. 우리 팀에 선수 107명, 코치 25명을 포함해 203명의 프로가 있다. 이들을 묶는 건 야구가 아니라 ‘프로’라는 의식이다. 프런트를 향해 ‘야구 해봤어? 선수 해봤어?’ 하는 건 동호회 수준이다. 우리가 하는 건 비즈니스다.”

 - 선수 평가에서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를 매우 중시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약 70%를 차지한다. 박병호는 3년간 평균 7.5 정도 된다.(박병호의 활약으로 팀이 한 시즌 7승 이상을 더 올렸다는 뜻) 강정호가 잘했을 때 MVP 수준인 10 정도 나왔다.”

 - 올해부터 홈으로 쓰는 고척돔 변수가 꽤 클 텐데.

 “가장 중요한 건 타구의 질이다. 바람 변수가 없기 때문이다. 타구의 질은 속도도 있지만 얼마만큼 자기 스윙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타자들은 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갖다 대는 스윙이 많다. 삼진 안 당하려고 갖다 대고, 투수는 안 맞으려고 이리저리 뺀다. 남자답게 정면 승부를 하는 게 프로라고 생각한다. 한 시즌 144경기 하는데 팬들도 생각하고, 경기 시간도 줄여야 한다.”

 - 빌리 빈을 도와주는 하버드 경제학과 출신(폴 데포데스타) 같은 자원이 넥센에도 있나.

 “통계학과 석사 출신과 삼성에서 거시경제 분석하던 친구를 지난해 스카우트해 전략팀에 배치했다. 이젠 과거 데이터를 보는 것 이상으로 포워드 싱킹(forward thinking), 즉 미래 예측이 중요하다. A선수의 근육과 근력을 키워서 타구 속도를 높이면 OPS(출루율+장타율)가 어떻게 되는가 등을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와 전략팀이 함께 연구한다. 올해 팀을 떠난 선수들의 WAR 합이 24 정도 되는데 다른 선수를 통해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도 시뮬레이션 하고 있다.”

 - 박병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첫 스윙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첫 스트라이크를 스윙했다면 반드시 안타를 치거나 최소한 파울을 만들어야 한다. 갖다 맞히는 게 아니라 진짜 자기 스윙으로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투수들이 첫 스트라이크에 대한 공포와 부담을 느낀다.”

 - 머니볼에서 빌리 빈은 “이래서 야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라는 말을 한다. 그랬던 순간은.

 “믿고 좋아한 선수들이 주전으로 도약했을 때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 인수했을 때, 딱 한 명 강정호만 보이더라. 대놓고 강정호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박병호는 2012년 7월 31일 LG에서 트레이드돼 8월 MVP가 됐다. ‘우리 구단에서 처음 MVP 나왔다’고 환호성을 지른 기억이 생생하다.”

 이 대표에게 야구를 통해 얻고 싶은 게 뭔지 물었다. “행복”이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난 운이 좋다. 2007년 투자회사를 만들었을 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업 제안이 많이 왔다. 그런데 다들 미쳤다고 하는 야구 사업을 하게 됐다. 우연인데 운명이다.”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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