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뜨겁고 뭉클, 김광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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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호 30면

6일은 가객 김광석(1964~1996)의 20주기를 맞는 날이었다. “나이 마흔이 되면 꼭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겠다”던 그는 그렇게 영원한 서른두 살로 남았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시대를, 세대를 넘어 여전히 흐르고 있다. 사후 20년, 그의 노래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기일인 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소극장에선 김광석추모사업회(회장 김민기) 주최로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가 열렸다. 전국의 김광석 팬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그의 노래를 불러보는 자리다. 올해는 기타와 하모니카를 사랑했던 고인을 기리며 노래 없이 악기 연주만으로도 참여가 가능토록 했다. 총 82팀이 예선에 참가해 13팀이 본선에 올랐다.


150석 정도 규모의 소극장이라 관람객도 메일 신청자 중 100명만 추첨했다. 헌팅캡을 눌러쓴 백발의 할아버지부터 비니로 멋을 낸 금발의 20대까지 말 그대로 남녀노소 세대불문. 무대 중앙에는 영원히 ‘젊은’ 김광석의 사진, 가수 이은미가 매년 구해온다는 산삼주, 그리고 작은 향불이 놓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가수 박학기는 “이 장소는 광석이가 1000회 라이브 공연을 한 곳이고,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장기 공연됐던 곳”이라며 “김광석은 지하철 1호선 같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서울의) 심장부 가장 깊숙한 곳까지 사람들과 소통한다”고 했다.


참가자들도 57세 중년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까지 전 세대를 아울렀다. 우연히도 이날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이들 역시 이들 최고령, 최연소 팀이다. 딸(바이올린)과 아들(건반), 그리고 아들의 선생님(코러스)까지 4인조 밴드로 참가한 박장희(통기타 연주와 노래)씨는 “네 명 모두 각각 예선을 치렀는데 나만 본선에 합격해 결국 한 팀으로 뭉쳐 나왔다”고 소개해 관객들을 한바탕 웃게 만들었다. 이들의 선곡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박씨는 “45개월 전 아내가 가족을 떠났다. 생전에 아내가 많이 아파서 한 번도 이 노래를 맘 편히 부를 수 없었는데 이제는 울지 않고 담담히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선정 이유를 소개했다. 실내였지만 목도리를 꼭 싸매고 무대에 오른 박씨의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목소리가 무대 위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곱고 흰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줬을 박씨의 아내를 떠올렸고,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을 박씨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꼈다. 훌쩍이는 소리가 조용히 퍼졌다.


본선 참가자 중에는 의외로 20대가 많았다. “아버지가 늘 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두셔서 자연스레 따라 부르게 됐다”는 김시혁군, “깊이 있고 울림 있는 가사를 가진 노래를 찾다가 알게 됐다”는 황보람양, “홍대 앞 라이브 무대에서 늘 김광석씨 노래를 부른다”는 3인조 가객프로젝트 밴드 모두 앞 세대로부터 김광석의 노래를 전해들은 젊은이들이다.


기타 전문연주가들을 후원하는 콜텍문화재단의 영재 이강호·임형빈·김영소군 역시 아버지가 김광석의 팬이라 쉽게 곡을 접했다고 했다. 서울·울산·대전, 사는 곳도 다르고 수업을 빠질 수 없었던 이들 중학생은 디지털 세대답게 영상 통화로 합주를 의논했다. 이미 유튜브 스타인 세 실력자는 ‘먼지가 되어’를 멋지게 소화해냈고 놀라운 기타 솜씨와 귀여운 외모는 객석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세 사람은 올해의 ‘김광석 상’을 타는 영광까지 누렸다.


4시간 가량 진행된 ‘김광석 다시 부르기’는 대회라기보다 김광석과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작은 음악회였다. 강승원(‘서른 즈음에’ 작곡가), 박학기, 한동준, 박승화(유리상자 멤버), 박기영·유준열(동물원 멤버), 안중재(기타 세션) 등 프로 음악가들이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사회·심사위원·행사진행을 맡았다. 편안한 객석에선 남녀 참가자만 나오면 “사귀라”는 농담과 응원이 쏟아졌다.


한 사람의 노래가 죽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뜨겁고 뭉클하게 다가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내 삶을 이야기하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노랫말의 힘이 클 터다. 20대는 다가올 그 시간이 두려워서, 40대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안타까워서 ‘서른 즈음에’를 부른다. 신혼부부는 미래를 다짐하며 중년의 부부는 약속을 되새기며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부른다. 사랑을 하는 이들은 답답해서, 사랑을 떠나보낸 이들은 아파서 ‘사랑했지만’을 부른다. 삶이 고단할 때는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라고 주문을 걸어본다. 김광석, 그대의 노래를 알고 있어 참 다행이다. ●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김광석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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