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간첩 조작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유족들에 70억 배상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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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 때 간첩 조작 사건인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피해자 유족들에게 국가가 70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부장 이은희)는 이 사건 피해자인 고(故) 권재혁·이일재·이형락·김봉규씨 유족 2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권씨의 부인 등 4명에게는 35억원을, 나머지는 8억~14억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이는 유족들이 앞서 받은 형사 보상금을 제외한 액수다.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은 1968년 7월 30일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재일 조총련의 국내 지하조직이라며 권씨 등 13명을 간첩 혐의로 수사했던 일이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정리위) 조사 결과 당시 중앙정보부는 권씨 등을 긴급체포해 9일~53일 간 불법 구금하면서 잠을 재우지 않거나 야전침대 다리 등으로 구타해 허위 자백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로 송치한 이후에도 중앙정보부 수사관들 입회 하에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권씨 등은 공판과정에서 줄곧 허위 자백임을 주장했으나 법원도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그대로 유죄를 확정했다. 권씨에 대해선 69년 9월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해 두달 만인 11월 형이 집행됐다. 이일재씨는 무기징역이, 김봉규·이형락씨는 각각 징역 7년과 10년을 선고받았다. 88년 사면 석방된 이일재씨를 제외한 두 사람은 형기를 모두 채웠다.

2009년 4월 과거사정리위는 이 사건이 조작된 간첩 사건이었다는 취지의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모두 사망한 뒤였다. 유족들은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5월 관련자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유족들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삼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이 오히려 조직적으로 공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박탈했다”면서 “피해자는 물론 가족들도 평생 간첩의 가족으로 매도당하는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았던 점이 인정되는 만큼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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