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 한 평 맘이 자갈밭일 땐 호미질을 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한 평 맘이 자갈밭일 땐 호미질을 합니다

뻣뻣하던 허리춤이 곱사등을 닮아 갈 즈음

메마른 고랑고랑에 사유의 씨를 심습니다

두 손을 모으는 일은 단비를 부르는 일

무릎 꿇어 앉는 일은 해를 당겨 앉히는 일

지새는 하루하루가 거름으로 녹습니다

산그늘 내려오면 차라리 고요를 배워

서리 맞아 시린 날도 뜨겁게 껴안습니다

촉촉한 행간을 뚫고 새 순이 돋을 때까지

-제6회 백수 정완영 전국시조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고, 2011년 서울신문과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조시인 성국희(38)씨. 그가 최근 펴낸 시조집 『꽃의 문장』(목언예원) 앞머리에 있는 ‘시인의 말’이다. 시조시인들은 작품집 전체에 붙이는, 독자에게 보내는 격의 없는 인사말조차 정갈하게 쓴다. 시인의 말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시조 작품이자 시인 자신의 시론(詩論)이다. 말의 텃밭을 가꾸는 태도에 있어 종교적인 엄숙성까지 내비치는 시인의 면모가 인상적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