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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클래식 영재들, 조바심 버리고 ‘좀 더 천천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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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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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 귀요는 “로망 앙상블이 발전해 유럽에도 소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릴 적엔 클라리넷이 싫었어요. 대신 굴드와 칼라스의 음반을 반복해 들었죠. 그러다 클라리넷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의 소리를 모방하기 시작했습니다. 표현의 폭이 넓고 목소리를 닮은 클라리넷의 매력에 눈떴죠.”

로망 귀요 서울대 음대 겸임교수
“빨리 최고가 되려는 압박감에
한국 학생들 뒷심 달려 아쉬움”
오늘 ‘로망 앙상블’ 창단 공연

 로망 귀요(46)는 프랑스 출신의 클라리넷 연주자다. 16세에 아바도 지휘 유럽연합유스오케스트라, 22세에 정명훈 지휘 바스티유 오케스트라, 34세에 말러 체임버의 수석 주자를 역임했다. 현재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이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05년부터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 연주하다 플루티스트 윤혜리의 초청으로 올해 서울대에 왔다. 지금은 제네바 음악원 교수와 서울대 음대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귀요가 한국에서 실내악 앙상블인 ‘로망 앙상블’을 결성했다. 김지영·김지윤(바이올린), 이한나(비올라), 장유진(첼로), 지효원(플루트) 등과 함께다. 국내에 앙상블은 이미 많지만 대부분 리더가 지휘자나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다.

로망 앙상블은 목관악기에 방점이 찍힌 실내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29일 밤 8시 서울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창단공연에서는 텔레만의 ‘두 대의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등을 연주한다. 연주는 녹음해 음반으로 발매한다. 이후 로망 앙상블은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음악회도 계획 중이다.

 10대 후반부터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아바도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많은 연주자들이 ‘안전한 해석과 연주’에 안주하고 있지만, 자신은 “패기와 실력을 지닌 한국 연주자들과 함께 나만의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싶다”며 “로망 앙상블이 발전해 유럽에도 소개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 학생들을 만나본 소감은 어떨까. “빨리 최고가 돼야 하는 한국 사회의 압박감이 심합니다. 한국의 14~16세 학생들의 뛰어난 재능을 보고 놀랄 때가 많지만, 그들이 20세가 되어도 별다른 진보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저는 ‘좀 더 천천히’를 주문하고 싶어요. 예술과 인성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음악계는 전통적으로 현악기 강세, 관악기 열세다. 그는 관악계 발전의 해법으로 음대에 (관)악기별 정교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글=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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