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싸움 밀릴 수 없다, 하얗게 센 머리 염색 안 한 이상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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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협의가 27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렸다. 양국 외교장관회담을 하루 앞두고 열린 이날 협의에는 이상덕 동북아시아국장과 일본 이시카네 기미히로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참석했다. 회의가 끝난 뒤 이시카네 국장이 청사를 떠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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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3시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 검은색 도요타 밴이 나타났다. 밴에서 내린 이시카네 기미히로(石兼公博·57)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기다리던 기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곧장 9층으로 향했다.

한·일 외교회담 전초전, 국장급 협의
이시카네보다 어리고 경력 짧지만
강한 인상 위한 협상 무기인 셈
윤병세 “청구권협정은 입장 불변”
오늘 타결돼도 국민 여론이 관건

 외교부에선 이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는 제12차 국장급 협의가 열렸다. 한국 측에서는 이상덕(55·사진) 동북아국장이 참석했다. 이 국장은 지난해 4월 1차 국장급 협의 때부터 수석대표로 참석해 왔다. 반면 이시카네 국장은 지난 11월에 열린 10차 회담부터 수석대표로 참석하고 있다.

 이 국장은 외교부 내 국장급 외교관 중 드물게 하얗게 센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검게 염색할 수도 있지만 일본과의 협상에서 기싸움에 지고 싶지 않아 염색을 하지 않고 있다고 동북아국 직원들은 전했다. 이 국장의 카운터파트인 이시카네 국장은 이 국장보다 두 살 많고, 외교관 경력도 길다. 이 국장이 1988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반면 이시카네 국장은 81년부터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나이와 연륜을 중시하는 동양 문화에서 자칫 기싸움에 밀릴 수 있는 부분이다. 이시카네 국장은 한국에서 차관급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수석대표인 6자회담의 일본 측 수석대표이기도 하다. 나이와 연차에서 밀리는 이 국장으로선 흰 머리가 일종의 협상 무기인 셈이다.

 27일 협상은 2시간 동안 이어졌다. 협상 종료 후 이시카네 국장은 들어설 때처럼 아무 말 없이 외교부 청사를 떠났다. 국장급 협의가 끝나면 보통 양국 국장들이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날은 식사 자리도 마련되지 않았다.

  양국은 외교장관 담판 전날 팽팽한 기싸움을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장급 협의 40분 전 약식 기자회견에서 “우리 수석대표(이상덕 국장)에게 정부의 분명하고 확고한 입장을 하달했다”며 “청구권 협정에 대한 저희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도 못 박았다. 이 바람에 외교장관회담 후 만찬을 할지 여부도 결정하지 못했다.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경우 만찬이 서로에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국장급 협의에선 핵심 의제에 대한 의견을 조율했다. 쟁점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사과 형식 등이었다고 한다. 양국은 그동안 11차례 국장급 협의를 했지만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날 협의에선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고 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명시적으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건 아베 신조 총리로서도 결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위를 하고 양국이 서로 유리한 대로 해석하는 선에서 합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성공회대 양기호(일본학과) 교수는 “정부 간에 타결이 된다 해도 양국 국민이 수용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며 “쉽지 않은 과제”라고 했다. 특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수용하느냐의 문제도 남는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 일본 정부의 진실한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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