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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봉석이 본 스타워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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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 144호>

오랫동안 베일에 싸인 채 소문만 무성했던 ‘스타워즈:깨어난 포스’(12월 17일 개봉, J J 에이브럼스 감독, 이하 ‘깨어난 포스’)가 드디어 개봉했다. 4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1977~)의 일곱 번째 에피소드다. 이번 영화는 원작의 캐릭터와 서사를 충실히 계승하며 ‘블록버스터 전문 흥행사’ 에이브럼스 감독의 이름값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오랜 팬이자 만화 전문 웹진 에이코믹스 편집장인 김봉석 영화평론가가 그 감상기를 전한다.

1990년대 후반,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1977~83)의 프리퀄 3부작(1999~2005)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렸다. 프리퀄을 제작한 다음, 오리지널 3부작의 속편인 에피소드7·8·9를 만든다는 말도 나왔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스타워즈:에피소드4-새로운 희망’(1977, 이하 ‘새로운 희망’) 제작 당시 원래 9부작으로 구상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후에 루카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처음부터 6부작으로 구상했다며 부인했지만, 팬들은 오리지널 3부작 이후의 이야기를 원했다.

루카스 감독이 ‘스타워즈’의 판권을 디즈니에 넘겼을 때, 팬들은 ‘스타워즈’의 다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리고 미국 TV 드라마 ‘로스트’(2004~2010, ABC), 영화 ‘스타트렉’ 시리즈(1977~)의 리부트를 연출한 에이브럼스 감독이 연출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에 일단 안심했다. 에이브럼스 감독은 과거의 신화를 되살리기 위해 현명한 선택을 했다. ‘스타워즈:에피소드5-제국의 역습’(1980, 어빈 커쉬너 감독, 이하 ‘제국의 역습’)과 ‘스타워즈:에피소드6-제다이의 귀환’(1983, 리처드 마퀀드 감독)의 시나리오를 썼던 로렌스 캐스단을 불러들인 것이다. 오리지널 3부작의 영광을 재현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오리지널 3부작에 대한 오마주

마침내 선보인 ‘깨어난 포스’는 유쾌하고도 의미심장한 영화다. 특히 기존 팬과 새로운 관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가 시작되면 별이 가득한 우주 위로 글자가 흘러간다. 원작 형식 그대로다. ‘깨어난 포스’는 엄연히 ‘스타워즈’ 시리즈의 일곱 번째 에피소드이자, 끝없이 흘러갈 이야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몰락한 은하 제국의 뒤를 이어 우주를 지배하려는 군사 집단 퍼스트 오더, 그에 맞서 평화를 수호하려는 공화국 반군이 오리지널 3부작의 영웅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의 행방을 찾아나선다는 게 이번 영화의 줄거리다.

‘깨어난 포스’는 ‘새로운 희망’과 ‘제국의 역습’을 충실하게 계승한다. 오리지널 3부작에서 루크가 두 로봇 C-3PO와 R2-D2를 구해줬듯, 레이(데이지 리들리)가 사막 행성에서 방황하던 반란군 로봇 BB-8을 구조한다. 레이가 퍼스트 오더의 병사인 스톰 트루퍼였던 핀(존 보예가)과 함께 퍼스트 오더의 추격에서 탈출하기 위해 훔쳐탄 우주선은 오리지널 3부작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한솔로(해리슨 포드)의 우주선 ‘밀레니엄 팔콘’이다.

제국군의 첨단 무기 ‘죽음의 별’을 연상시키는 퍼스트 오더의 비밀 병기 ‘킬러 스타’도,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퍼스트 오더의 타이 전투기와 반란군의 엑스윙 전투기가 맞붙는 공중전 역시 원작의 확장판이다. 이처럼 ‘깨어난 포스’는 오리지널 3부작을 연상시키는 오마주와 이야기 구성으로 원작 팬을 매료시킨다.

독립적인 여주인공 레이와 그의 흑인 조력자 핀

새로운 주인공들도 무척 흥미롭다. 레이는 훈련을 통해 포스를 자각했던 오리지널 3부작의 루크와 달리, 스스로 힘을 각성하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결코 남자에게 기대지 않으면서도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마움을 표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 고난을 극복하는 강인한 여성. ‘매드맥스:분노의 도로’(5월 14일 개봉, 조지 밀러 감독)의 여성 캐릭터 이상으로 독립적인 여전사다.

레이의 조력자인 핀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흑인 주인공이다. 퍼스트 오더의 병사 출신인 그는 학살 임무에 회의를 느끼고 스톰 트루퍼의 하얀 마스크를 벗고 검은 얼굴을 드러낸다. 오리지널 3부작에서 루크의 조력자로 솔로가 등장했던 것처럼, ‘깨어난 포스’에서 핀은 레이를 돕는 강력한 아군이다. 남성 판타지에 가까운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여성과 흑인이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는 점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게다가 ‘스타워즈’ 시리즈는 ‘미국의 신화’라고 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콘텐트 아닌가.

다스 베이더의 뒤를 잇는 새로운 악당은 검은 마스크를 쓴 카일로 렌(애덤 드라이버)이다. 그 역시 다스 베이더처럼 선(善)의 편에서 태어났지만 악(惡)의 힘에 사로잡힌 존재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내가 네 아버지다(I Am Your Father)”는 ‘깨어난 포스’에서 아들과 부모의 관계로 역전된다. 아버지를 거역하고 선의 길에 나선 루크와 반대로, 렌은 부모에게 맞서 악을 택한 인물이다.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제국의 역습’과 마찬가지로 ‘깨어난 포스’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다시 팽팽하게 맞선다.
 
시리즈의 부활 알린 성공적 신호탄

‘깨어난 포스’는 전편을 재구성하고 추억을 되살리면서 새로운 세기에 걸맞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레이는 과연 누구의 딸일까’ ‘레이는 어떤 이유로 홀로 버려진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 하는 에이브럼스 감독의 장기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도 여전하다.

이 시리즈의 신화는 ‘깨어난 포스’로 시작된 새로운 3부작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향후 2년 주기로 개봉할 두 편의 속편과 별개로, 2016년과 2018년에는 스핀오프 영화가 ‘스타워즈 유니버스’를 채운다. 2016년에는 ‘새로운 희망’ 직전 상황을 배경으로 죽음의 별 설계도를 입수하려는 반란군의 이야기 ‘스타워즈:로그 원’(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2018년에는 솔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계획되어 있다. 이미 소설과 게임에서 다양한 주인공이 등장했던 이력답게 ‘스타워즈’ 시리즈의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팽창하고,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 갈 것인지 궁금하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20세기의 신화였다. 21세기의 신화는 수퍼 히어로가 활약하는 마블 유니버스가 선점했다. ‘깨어난 포스’는 과거의 신화를 현재로 되살린다. 20세기에 상상했던 스페이스 오페라를 조금 더 세련되게, 현대적인 감각의 인물들로 채우고 확장했다. 그런 점에서 ‘깨어난 포스’는 멋지게 성공했다. 과거를 숭배하면서 이만큼의 새로움을 채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디즈니라는 거대한 품안에서 만들어지는 스타워즈 유니버스와 마블 유니버스는 과연 어떻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상상은 끝없고 세계는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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