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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10개 감정을 한 세트로 작업 … ‘움짤’은 동작당 3장 이상 그려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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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Emoticon)은 글 대신 감정·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감정(emotion)’과 ‘기호(icon)’라는 영어 단어가 합쳐져 탄생한 말인데요, 일본어로 그림문자를 뜻하는 ‘에모지(繪文字)’에서 유래된 이모지(Emoji)라고도 부릅니다. 이모지는 쉽게 풀면 ‘그림문자 이모티콘’이에요. 구분 없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모티콘은 문자기호, 이모지는 그림문자를 주로 나타내죠. 현재 카카오 프렌즈, 라인 캐릭터 등에서 볼 수 있는 이모티콘은 감정 전달 수준을 넘어 캐릭터 상품으로도 활용되고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들이 이모티콘 제작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10개 감정을 한 세트로 작업, ‘움짤’은 동작당 3장 이상 그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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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 ‘보고 싶어’, ‘신나’, ‘피곤해’ 등의 감정 표현을 그림으로 할 수 있는 이모티콘은 문자의 혁명이라고도 불립니다. 길게 글을 쓸 것 없이 그림으로 간단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 ‘T-T’, ‘>o<’ 등의 기호 이모티콘도 있고, 화려한 캐릭터 이모티콘도 있습니다. 귀여운 토끼나 고양이·강아지를 비롯한 우스꽝스럽게 생긴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특징을 뽐내며 기쁨·슬픔·희망·좌절 등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어요. 사용하고 싶은 이모티콘을 손가락으로 선택하기만 하면 멋진 캐릭터가 자신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 줍니다.

지난 22일, 소중 학생기자들이 서울 숙명여대 창업보육센터의 한 작업실을 방문했습니다. 우리가 컴퓨터·스마트폰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 이모티콘이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문을 열자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들이 눈에 띕니다. 동글동글한 몸을 가진 흰색 토끼인 ‘몰랑’ 캐릭터 스티커가 방 안 가득 붙어 있네요. “어서오세요. 소중 학생기자 여러분.” 몰랑 이모티콘을 만든 윤혜지(26) 작가가 환한 미소로 학생기자들을 반겼습니다.

이모티콘 제작 과정
이모티콘은 크게 3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 뒤의 배경과 함께 캐릭터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경우, 움직임만 있는 경우, 움직이지 않고 배경도 없는 경우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이모티콘을 선택했을 때 캐릭터가 손을 흔들거나 춤추는 것을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잠이 온다’는 감정 표현을 할 때 사용되는 이모티콘 중 캐릭터 뒤로 비치는 밤하늘은 배경에 해당되겠죠. 소중 학생기자들은 윤 작가와 함께 ‘움직임만 있는 경우’에 해당되는 이모티콘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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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인 ‘태블릿’을 사용해 몰랑 캐릭터에 색을 입히는 윤혜지 작가.

1단계 아이디어 구상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밑그림으로 기초를 잡는 것처럼, 이모티콘을 만들 때도 계획을 세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모티콘의 가로·세로 길이와 비율은 어느 정도로 할지, 무슨 상황을 어떤 감정으로 표현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하는 것이죠. 이모티콘은 가로와 세로를 6대 4 비율의 직사각형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만들고자 하는 감정 표현을 종이에 적어 정리를 하는데요, 한 번에 한 개의 이모티콘을 만드는 것보다 특정한 상황을 주제로 정해 그에 맞는 다양한 감정 표현을 그려내는 것이 보통입니다. 가령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주제라면, 손인사·슬픔·축하·사과·행복·당황·고마움·바쁨 등의 감정 표현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10~12개 감정 표현을 한 세트로 묶고, 여유분으로 2~3개의 표현을 추가하면 아이디어 설계가 완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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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스케치
어떤 감정 표현을 만들지 정한 후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스케치를 한 표현당 1~3장 정도 그립니다. 간단한 색을 입혀 캐릭터를 그리는 기본 스케치죠. 손으로 그려도 되고, 컴퓨터로 작업해도 됩니다. 대부분 작가들은 컴퓨터 작업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어떻게 움직이게 할지 동작 설명을 각 스케치 아래 적습니다. 스케치 단계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고쳐야 할 부분이 보인다면 쓱싹쓱싹 지우고 다른 표현으로 바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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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원화(원본그림) 작업 스케치
그림에 색을 입히고, 움직임에 필요한 원화를 그리는 단계입니다. 이모티콘이 움직이는 원리는 여러 장의 그림을 빠르게 넘겨 움직이게 하는 듯한 만화의 연출 기법에 있습니다. 연속 동
작의 원화를 여러 장 그리고 합쳐 움직이는 연출이죠. 예를 들어 눈을 깜빡이는 장면이라면 감은 눈과 뜬 눈을 모두 그려야 합니다. 한 동작당 최소 3~4장 이상 그려야 움직임이 자연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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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생활용품·학용품 등으로도 만나볼 수 있는 몰랑 캐릭터.

4단계 1차 원화 완성
어떤 느낌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싶은지 검토하는 단계입니다. 컴퓨터로 작업할 경우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됩니다. 3번 단계에서 그린 원화들을 0.5초 간격으로 빠르게 반복, 나타나게 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3~4장의 원화를 한 표현으로 합치면 소위 ‘움짤’이라 불리는 그림 파일이 완성되죠. 이렇게 각 감정 표현별로 원화를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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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 수정하기
10개 이상의 감정 표현 이모티콘이 한세트로 묶이며 어느 정도 완성이 됐습니다. 하지만 1차 원화가 모두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잘 쓰지 않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표현,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는 표현 등을 삭제하며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죠. 더 실용적이거나 재미있는 표현이 떠오를 경우 2번 단계로 되돌아가 원화를 추가하기도 합니다.

6단계 제목 정하기
수정 작업이 끝나면 이모티콘 세트의 주제에 맞춰 제목을 정합니다. 몰랑 캐릭터가 보여주는 일상 생활 표현이 주제라면 ‘몰랑의 몰랑몰랑한 하루’와 같은 제목을 붙일 수 있겠죠. 또 전문 작가들은 자신이 만든 이모티콘 세트의 저작권 표시도 합니다. ‘Copyright 작가이름’ 혹은 ‘작품이름 ⓒAll RightsReserved’와 같은 식으로 전체 페이지 하단에 표시되죠. 우리가 사용하는 이모티콘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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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지 작가가 이수아(왼쪽) 전수영 학생기자에게 이모티콘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몰랑’ 하나로 200개 넘는 이모티콘 만들었죠

윤혜지 작가 인터뷰

-몰랑 캐릭터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중학생 때 나만의 마스코트를 만들고 싶어 수업시간에 심심풀이로 그리다가 우연히 탄생했습니다. 스마트폰에 쓸 수 있는 배경이나, 공책에 붙이는 스티커로 사용하고 싶어 그림을 편집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몰랑이라는 이름은 어린 사촌동생이 지어줬습니다. 처음에는 ‘말랑’이었어요. 흰 토끼가 말랑말랑하게 생겼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죠. 조금 더 이름처럼 들리는 어감으로 바꾼 것이 지금의 몰랑입니다.”

-이모티콘 캐릭터의 특징을 잡을 때 어떻게 하나요.
“저만의 그림 규칙을 바탕으로 특징을 잡아요. 최대한 단순한 선으로 그리고, 전체적인 모양 역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원형으로 잡았습니다. 귀엽게 느껴질 수 있는 토끼나 강아지 등의 동물, 예쁜 색과 모양을 가진 사물을 주로 사용합니다. 얼굴과 몸의 비율은 아기를 연상케 하도록 얼굴 부분을 크게 잡습니다. 귀엽잖아요. 눈은 동그랗고 이마는 넓게, 볼은 통통하게 만들어 포동포동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게 만들었습니다.”

-이모티콘 제작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몰랑이라는 캐릭터 하나로 20세트가 넘는 이모티콘 작업을 했어요. 같은 캐릭터로 겹치지 않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야 할 때가 어려워요. 이모티콘이 움직이게 하는 기술적인 부분도 어려워요. 각각의 원화가 가진 파일 용량을 계산해야 하고, 더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요. 중간에 조금만 그림을 잘못 그려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롭습니다.”

-다양한 감정이나 상황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할 때 주의할 점이 있나요.
“평소에 ‘정말 사용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표현 위주로 아이디어를 내는 게 좋아요. 아무리 재미있고 귀여운 이모티콘을 많이 갖고 있다 해도, 막상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은 꼭 있게 마련이니까요. 또 어떤 사람이 이모티콘을 사용할지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친구와 대화할 때 사용하는 이모티콘은 재미있고 엽기적인 유행어로 가득 찬 세트가 좋아요. 반면 어른에게 예의를 갖춰 대화할 때는 부드럽고 정중한 이모티콘 세트가 필요하고요. 사용할 사람을 생각하고 이모티콘을 만들면 좋습니다. 특히 애매하고 확실하지 않은 감정 표현은 이모티콘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주의해야 해요.”

-이모티콘을 만드는 작가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이모티콘은 특정 자격증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컴퓨터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프로그램 사용법 정도를 알면 됩니다.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슥슥 그림을 그릴 때 유용합니다. 화려하고 감성적인 그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또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은 깔끔하고 단순한 그림을 그릴 때 적합해요. 이런 프로그램 사용법에 익숙해져야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할 수 있어요.”

-이모티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화나 직접적인 대화보다 손가락으로 문자를 써 소통하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이모티콘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 즐겁게 대화하기 위한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으니까요. 글자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상황이 존재하는 한, 이모티콘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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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지 작가는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학생이자 캐릭터 ‘몰랑’의 이모티콘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1년 ‘몰랑’을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제공한 1세대 이모티콘 작가이기도 하다. 2013년에는 서울시 홍보대사로 위촉된 바 있으며 현재 디자인 회사 ‘하얀오리’를 운영하고 있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동행취재=이수아(서울 문현초 4)·전수영(서울 도성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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