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반 아베' 일본 뉴스캐스터, 12년만에 앵커석에서 물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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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V아사히 캡쳐]

일본 민영방송인 ‘TV 아사히(朝日)’의 간판 앵커 후루타치 이치로(古館伊知郞·61)가 11년 8개월 간 진행해온 메인 뉴스 ‘보도 스테이션’ 앵커직에서 물러난다. TV 아사히는 24일 후루타치 앵커가 내년 3월 말 퇴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후루타치는 2004년 4월 5일 ‘보도 스테이션’이 첫 전파를 탄 이후 줄곧 메인 앵커로 평일 밤 10시에 시청자들을 만나왔다. 날카로운 뉴스 분석과 부드러운 표정, 거침없는 멘트로 많은 고정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TV 아사히는 “후루타치 앵커가 현재의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뉴스를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먼저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여러 차례 만류했지만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는 본인의 뜻이 워낙 강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도 스테이션이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오랜 기간 높은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후루타치 앵커의 노력 덕분이라며 큰 공로에 감사 드린다”고 덧붙였다. 전날 방송된 2960회까지 보도 스테이션의 평균 시청률은 13.2%로 집계됐다.

1954년 도쿄에서 태어난 후루타치는 릿쿄(立敎)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77년 아사히(朝日)방송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입사 직후 ‘월드 프로레슬링’ 프로그램을 맡아 실황 중계로 이름을 날렸다. 스포츠 캐스터로 자리를 잡아가던 84년 퇴사한 뒤엔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영화 ‘스위트 홈(88년 작품)’ 등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그가 진행해온 보도 스테이션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해왔다. 지난 3월에는 원전 재가동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시사 평론가 고가 시케아키(古賀茂明)가 생방송 도중 아베 정권의 압력으로 자신이 물러나게 됐다고 주장하며 ‘나는 아베가 아니다’는 문구를 적은 종이를 펼쳐 보여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후 자민당은 TV 아사히 경영진을 불러 당시 상황에 대해 조사를 벌였고 압력 논란을 빚었다. 이 때문에 후루타치의 퇴임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TV 아사히는 2004년 3월 일본의 전설적인 명 앵커 구메 히로시(久米宏·71)가 18년 간 진행해온 심야 뉴스쇼 ‘뉴스 스테이션’ 앵커직에서 물러난 뒤 후루타치를 영입해 ‘보도 스테이션’ 앵커를 맡겼다. 구메 히로시는 4795회 마지막 생방송 도중 “스스로에게 포상을 하겠다”며 컵에 따른 맥주를 마시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구메의 ‘뉴스 스테이션’ 평균 시청률은 뉴스 프로그램으로는 경이적인 14.4%를 기록했다. TV 아사히는 구메 히로시와 후루타치 이치로의 뒤를 이을 메인 앵커 선발작업에 착수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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