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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뒷얘기] 수사관 자리비우자 이기호·이근영 귓속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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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30일 정오 서울 강남구 대치동 H빌딩 15층에 있는 송두환 특별검사팀 조사실.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 두 사람만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을 대질 조사하던 특검팀 파견 검사와 수사관들이 "식사를 하고 오겠다"며 모두 자리를 비운 것이다.

그러나 조사실에서 나온 수사진은 식당이 아니라 모니터가 설치된 옆방으로 들어갔다. 조사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두 사람의 태도를 관찰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두 사람은 곧 가까이 다가가 조용하게 무슨 말인지를 계속 주고받았다. 이를 통해 특검팀은 두 사람이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특검팀은 이날 李전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때 증거 인멸이나 도주할 우려가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특검 방침이 적용된 것이다.

지난 25일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한 특검 결과가 발표된 뒤 조사 과정에서 있었던 뒷얘기가 수사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은 특검 수사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던 문건이 발목을 잡았다. 李전위원장은 산업은행 총재 시절이던 2000년 6월 李전수석이 현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며 걸어온 전화 내용과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전화 내용에 대한 '모범 답안'을 만들어 박상배 전 산은 부총재에게 주었다.

수사가 한달쯤 진행됐을 때의 일이다. 산업.외환.중국 은행과 국정원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정상회담을 앞두고 송금된 현대상선의 산업은행 대출금이 북한 계좌로 들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특검팀은 남북 관계가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종훈 특검보는 브리핑 도중 "남북 관계도 고려해 달라"며 눈물을 흘렸으며, 송두환 특검도 술자리에서 눈물을 떨어뜨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가 종반으로 향하며 특검팀 안팎에선 다소 여유 있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구속되기 전 수사 검사들과 조사실에서 폭탄주를 마시며 회한을 토했다.

처음 소환될 때만 해도 취재진에게 침묵으로 일관하던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소환이 거듭되자 나중에는 "기자님들, 바이바이"하고 인사하며 귀가할 정도로 기자들과 친해졌다.

자신의 집에서 압수당한 물건을 찾으러 특검 발표 이틀 뒤 특검팀 사무실에 들른 朴전부총재는 기자들에게 "앞날이 구만리 같으니 나처럼 되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임장혁.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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