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죽었다” 성폭행범 석방에 들끓는 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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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범죄가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패배했어요. 지난 3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군요.”

버스 여대생 잔혹 살해범
법원 “미성년자 최고형 3년
계속 수감할 법적 근거 없어”

 아샤 싱은 20일(현지시간) “법원이 딸과 내 고통을 이해한다면 이럴 순 없다”고 말했다. 3년 전 그는 전세계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인도 여대생 성폭행 사건으로 딸을 잃었다. 남자 친구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조티 싱(당시 23살)은 버스에서 6명의 남성들에게 잔혹하게 성폭행 당했다. 도로에 버려진 딸은 내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싱은 1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20일 6명의 범인 중 한 명이 풀려났다. 미성년자의 법정 최고형을 3년으로 제한한 인도 소년법에 따라 범행 당시 17살이던 범인이 형기를 모두 채운 것이다. 싱의 가족과 여성·시민단체들은 그의 석방을 금지해 달라고 청원했지만 뉴델리 고등법원은 “계속 수감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거부했다. 6명의 범인 중 4명에겐 사형이 선고됐고 1명은 교도소에서 자살했다.

 석방 소식이 알려지자 뉴델리 인디아게이트 앞에선 수백 명의 시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싱의 아버지를 비롯한 시위대를 체포했다. 시위대는 “인도의 정의는 죽었다” “소년법을 개정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싱의 어머니는 지난 16일 석방 반대 시위에서 딸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렀다. 그 동안 조티 싱은 ‘니르바야(Nirbhaya·두려움 없는 사람)’로 불렸다. 인도에선 성범죄 희생자의 이름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싱의 사망 이후 세계적 공분이 일면서 인도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사회적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잔혹 범죄를 소년법 적용에서 제외하는 법안은 3년째 상원에 계류 중이다. 법대생 돌리 카우시크(22·여)는 CNN 인터뷰에서 “인도의 성폭행은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기도 한다”고 개탄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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