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되는 이청용, 1716일 만에 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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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팰리스 이청용이 20일 스토크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다. 이청용은 4년8개월 만에 프리미어리그 골을 기록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크리스탈팰리스 페이스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크리스탈팰리스의 미드필더 이청용(27).

스토크시티전 후반 43분 결승골
4년 전 부상 이후 EPL서 첫 득점
26일 첫째 딸 출생 앞두고 부활포

 그의 오른쪽 다리에는 아직도 뼈를 고정하는 금속핀 3개가 박혀 있다. 기억하기도 싫은 2011년 7월31일, 이청용은 잉글랜드 5부리그 뉴포티카운티와의 연습 경기 도중 상대선수로부터 거친 태클을 당한 뒤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뼈가 부러지는 ‘딱’ 소리가 관중석까지 들릴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당시 이청용은 산소호흡기를 쓴 채 들것에 실려나갔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정강이뼈가 두동강이가 난 ‘이중 골절’이었다. 큰 수술을 받고 다시 일어난 이청용은 “뼈는 한 번 부러지고 난 뒤엔 더욱 단단해진다. 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이청용이 다시 날아올랐다. 20일 영국 스토크 온 트렌트의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 스토크시티와의 원정 17 라운드 경기. 이청용은 1-1로 맞선 후반 43분 천금같은 결승골을 뽑아내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후반 36분 교체출전한지 7분 만에 이청용은 페널티 박스 밖 20m 지점에서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청용의 골로 2-1로 승리한 크리스탈팰리스는 6위(9승2무6패)를 달렸다. 평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소녀 슛(힘 없는 슛)’의 오명을 씻는 호쾌한 한 방이었다. 이청용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을 올린 건 볼턴 시절이던 2011년 4월10일 이후 4년8개월 만이다. 날짜로는 1716일 만이다. 앨런 파듀 크리스탈팰리스 감독은 “이청용의 슛은 대단히 정교하고 날카로웠다. 그의 골로 아시아 사람들이 밤잠을 다 설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청용은 “내가 기록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골”이라고 말했다.

 이청용은 2011년까지는 별명인 ‘블루 드래곤(푸른 용)’처럼 펄펄 날았다. 2009년 FC서울을 떠나 프리미어리그 볼턴으로 이적한 이청용은 2010년 ‘볼턴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 해 태극마크를 달고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잇따라 골을 터뜨렸다. 주가가 오르면서 프리미어리그 첼시와 리버풀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7월 부상을 당한 이후엔 예전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재활훈련 끝에 2012년 5월 그라운드에 복귀했지만 시련과 불운은 계속됐다. 챔피언십(2부리그)으로 강등된 소속팀 볼턴은 2시즌 연속 1부리그 승격에 실패했다. 지난해 브라질월드컵에도 이청용은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지만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축구팬들은 “상대 선수의 과격한 태클이 테크니션 이청용을 망쳤다” 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월 프리미어리그 크리스탈팰리스로 이적한 뒤 재기를 별렀지만 그는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프리미어리그 17경기 중 단 5경기에만 교체출전하는데 그쳤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까지 이청용의 처지를 걱정할 정도였다. 말수가 적은 이청용은 시련이 닥치면 더욱 강해진다. 그의 아버지 이장근 씨는 20일 “청용이가 2011년 수술 직후 다리에서 고름이 줄줄 흐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는데도 환하게 웃는 사진을 가족에게 보내왔던 걸 기억한다. 청용이는 그동안 차분히 기회를 기다렸다”고 전했다.

 호리호리한 체격(1m80cm, 69kg)의 이청용은 누구못지 않은 독종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를 악물고 공을 찼다. 그로 인해 이가 상해 치열이 삐죽빼죽 제멋대로다. 지난해 첫사랑인 중학교 동창과 결혼한 이청용은 오는 26일 첫 딸을 얻을 예정이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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