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사 분명하신 하나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58호 27면

나는 내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여기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도와주실 것을 믿는다. 그렇다고 나의 사생활에 있어서 특권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공과 사가 분명하시다. 대표적인 예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셨지만 십자가의 수난을 면하게 해주시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분별한 사랑이 아니었다. 매우 엄한 사랑이었고 당신의 섭리에 입각한 사랑이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세 번이나, 할 수만 있다면 고난의 잔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청을 거절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들의 희생이 필요했고 그것을 비켜 갈 수 없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에게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도 그렇게 하셨다. 사도 중의 하나인 바울에게 육신의 가시가 있었다. 바울이 세 번이나 그 가시를 제해 달라고 구하였으나 하나님은 거부하셨다. 당신의 은혜가 바울의 연약함을 통해 더 온전하게 된다는 이유를 대셨다.


인간 세상에서는 줄만 잘 서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온갖 청탁과 로비가 난무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청탁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도와줄 수 없는 일이 많다.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생사의 문제에 대해서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하나님께 줄을 대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않아 청탁을 할 수 없고 특혜를 요구할 수 없다. 하나님은 공평하고 엄격하다. 이방인에게도 비를 내려 주고 악인에게도 햇빛을 비춰 준다고 했다. 나만 사랑하시는 게 아니고 남도 사랑하신다. 인생의 시련을 항상 면하게 하지 않고 어떤 시련은 감당하도록 허락하신다. 인간을 낮추시고 연단하시며 고난을 통해서 귀중한 교훈을 얻도록 하신다.


어떤 경우엔 하나님이 너무 엄해 보여서 당신의 선하심을 가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좋은 하나님이 아니고 나쁜 하나님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갖고 있는 의구심이 그것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많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믿기 어렵다. 이 문제는 인간적인 관점만으로 해답을 얻을 수 없다. 내가 원하고 소원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한 도리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러한 생각의 덫에 빠져 있다.


이 덫을 빠져 나오는 길은 나의 소원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한두 가지 일에 연연해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가? 하나님이 선하지 않았다면 이제껏 내가 어떻게 살아올 수 있었는가? 부모가 자식을 낳아 키워준 것 자체가 사랑의 증거이지, 자식이 달라는 모든 것을 허락해야 사랑하는 건 아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하나님과 다투고 씨름하면 할수록 더 마음이 괴롭고 인생이 힘들게 느껴지지만, 감사하고 신뢰하면 마음도 평안하고 인생도 더 잘 풀린다. 오프라 윈프리가 말하길 신앙과 불신의 결정적 차이는 선한 결과를 낙관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했다. 선한 결과를 경험하려는 사람은 조금만 더 인내해야 된다. 믿음이 열매 맺을 때까지 좀 더 기다려 주어야 된다.


김영준 목사pastortedkim@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