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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을 사랑한 과학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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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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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문화부장

포크 뮤지션과 과학자. 얼핏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전설적인 포크 스타 밥 딜런에 대한 과학자들의 사랑이 요 며칠 외신을 통해 소개됐다.

1997년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KI)의 과학자 2명은 과학잡지 ‘네이처’에 기고할 연구 논문을 쓰면서, 자신들의 우상 밥 딜런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기로 했다. 논문 제목을 딜런의 히트곡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에서 가져와 ‘질소산화물과 염증: 대답은 부는 바람 속에(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라고 지은 것이다.

 딜런의 팬인 KI 과학자 5명은 이참에 재미있는 내기를 했다. 은퇴할 때까지 학술 논문이나 리뷰 등의 제목에 딜런의 노래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에게 점심을 사기로 한 것이다. 무려 17년간 계속된 이 ‘깜찍한’ 내기는 지난해 우승자가 나오면서 끝이 났다. 이들은 동네 식당에서 ‘우승턱’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이 무렵 KI 도서관의 한 사서가 자료를 정리하다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골수세포에서 나온 뉴런들의 세대: 궤도 위의 혈액, 운명의 단순한 뒤틀림?’이란 의학 논문 제목이 딜런의 앨범 ‘블러드 온 더 트랙스(Blood on the Tracks)’와 거기에 실린 ‘심플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Simple Twist of Fate)’를 섞은 것이란 점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검색에 들어갔고, KI 과학자들을 알게 됐고, 마침내 KI 연구진들과 함께 다른 나라 과학자들도 딜런을 논문 제목에 인용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를 담은 그들의 논문이 최근 의학 저널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실렸다. ‘자유분방한(Freewheelin’) 과학자들: 생체의학 문헌의 밥 딜런 인용하기’다. 제목 중 ‘프리힐링(Freewheelin)’역시 딜런의 2집 제목이다. 논문에 따르면 딜런의 노래는 데뷔 8년째인 70년 미국 의학 논문에 첫 등장한 이후 의학문헌 213편의 제목에 등장했다. 

 이들은 딜런의 홈페이지와 세계 최대 의학문헌 소장처인 미국 보건부 산하 국립의학도서관의 온라인 검색도구 ‘메들라인(MEDLINE)’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철학적인 가사의 음유시인 딜런의 음악은 이렇게 오래도록 곳곳에 살아 있는 것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딜런의 음악, 과학자 ‘덕후’들의 딜런 사랑에 더하여 이런 사소한 관심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입증해내는 디지털의 힘까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양성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