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의 진밭골 그림편지] 6월 28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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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비가 내립니다. 풀숲은 기다렸다는 듯이 풋풋한 풀 냄새를 풍깁니다. 흙밭도 흠뻑 젖어 쾨쾨한 흙 냄새를 뿜어냅니다. 숲은 이번 비로 더욱 무성해졌습니다. 밀림처럼 변한 숲은 내가 즐겨 찾던 산길조차 덮어버렸습니다. 한여름은 숲으로부터 나의 발길을 멀리 밀어 놓았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집 안에 웅크러지는데 오리와 거위들은 제 세상 만난 듯 신이 났습니다. 메말랐던 묵은 논에 물이 차니 쪼르르 달려가 자맥질을 하고 날개 죽지를 쭈욱 펴서 다듬고 수컷은 암컷을 쫓아 빙빙 돕니다. 먹이를 주는 사람을 따라 가축이 되었어도 언제나 자연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 있는 그들이 부럽습니다.

비 오는 여름날이면 울창해진 숲에서는 기묘한 울림이 느껴지곤 합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숲인지 모르게 뒤섞인 벌거벗은 자연의 나신을 만나는 듯합니다. 그 나신이 뿜어내는 비안개 빛 숨결에서 어렴풋이 느낍니다. 아득히 멀어진 대지의 어머니가 아직도 거기 누어 숨 쉬고 계신 것을.

김봉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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