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北 김정은 "수소폭탄 보유하고 있다"…軍 "신뢰성 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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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일 수소폭탄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에서 11일 열리는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을 하루 앞두고서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 위원장이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며 “오늘 우리 조국은 자위의 핵탄, 수소탄(수소폭탄)의 폭음을 울릴 수 있는 핵보유국”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수소폭탄 보유를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수소폭탄은 원자폭탄 보다 수십배 파괴력이 크다.

그러나 정보 당국은 김 위원장의 발언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보 당국자는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에 비해 위력이 크기 때문에 실험을 하면 강력한 지진파와 기체에서 핵물질이 포집되는데 아직까지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발언의 형식과 시점을 볼 때 블러핑(bluffingㆍ엄포)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도 내년 5월 36년만에 개최할 당 대회를 앞두고 국방력을 과시하면서 대내 결속을 유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성렬 북한연구학회장은 “북한이 수소폭탄을 개발하려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발에 성공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며 “발언 공개 시점을 볼 때 11일 당국회담에서 주도권을 잡으면서 북한 주민들에겐 국방력을 과시해 체제를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말했다.

남측뿐 아니라 미국을 염두에 뒀다는 시각도 있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최근 미국이 대북 추가 제재를 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는데 대한 반발이자 핵개발 능력을 과시하며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8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 부대를 지휘 총괄하는 ‘전략군(Strategic Rocket Force)’을 제재 대상에 지정했다.

같은 날 서맨사 파워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정식 의제로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미국이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자 수소폭탄 보유 발언으로 맞대응한 거란 분석이다.

지난 2013년 3차 핵실험 당시 북한이 수소폭탄 전단계인 증폭핵분열탄(boosted fission weapon)을 실험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 적이 있다. 원자폭탄은 고농축우라늄(HEU)ㆍ플루토늄 등 핵물질이 분열할 때 발생하는 높은 온도와 압력을 이용하며, 수소폭탄은 핵물질이 융합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하지만 당시에도 정부는 실험가능성을 부인했다. 증폭핵분열탄은 수소폭탄의 전단계다. 중심 폭발력을 수소의 핵융합반응이 아닌 원자탄 핵분열 반응에 의존한다. 국방부는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당시 "파괴력이 6~7kt으로 관측했다"며 "이 정도 파괴력이면 증폭핵분열탄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2010년 5월에도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으나 정부는 역시 성공 가능성을 부인했다.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선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이 진전을 거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평북 영변과 함북 길주 등지에서 방사성동위원소 분리 시설을 가동하면서 수소폭탄 연구를 오랜기간 해왔다는 이유에서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무기의 첫 단계가 핵분열탄이고, 핵분열탄에 약간의 매개체를 넣은 게 증열탄, 마지막 단계가 수소폭탄”이라며 “북한은 10여년 전부터 수소폭탄을 연구해 왔기 때문에 핵분열탄보다 성능이 높은 증열형 폭탄까지는 성공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ㆍ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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