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가쟁명:유주열]한국인과 결혼한 중국 최고의 미인

중앙일보

입력

1930-40년대 상하이 연극(stage)과 은막(screen)계에서 활약한 4명의 국보급 중국 여배우(四大名旦)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장루이팡(張瑞方) 바이양(白楊) 수시우원(舒繡文) 그리고 친이(秦怡)등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그 중에 친이를 중국 최고의 미인(中國最美的女性)으로 꼽았다.
최근 외지(外紙)에서 4명의 여배우 중에 영화의 도시 상하이를 지키면서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93세의 친이의 근황을 소개했다. 하얀 피부와 검은 눈동자가 아직도 매력적인 친이는 충칭(重慶) 시절부터 친구였던 장루이팡이 3년 전에 죽음으로써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배우가 되었다. 장루이팡이 죽기 몇 년 전에 당시 상하이 공산당위 서기인 시진핑(習近平) 현 국가주석이 그녀를 찾아 존경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친이도 중국 10대 여걸로 선정되어 중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문화 명인(名人)의 한사람이다.
중국의 잉그리드 버그만으로 불리던 친이는 1947년 궈모루(郭沫若)의 주례로 한국인 김염(金焰)과 세기적인 결혼을 하여 이듬 해 아들 첩(捷)을 낳았다. 김염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 큰 성공을 거두어 “상하이의 루돌프 발렌티노”라는 별명을 얻었다. 발렌티노는 무성영화시대 최고의 미남 배우였다.
김염은 독립 운동가 김규식 박사의 처조카이다. 김규식 박사가 텐진의 베이양(北洋)대학(지금의 텐진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있을 때 김염은 김덕린이라는 이름으로 저우언라이의 모교인 난카이(南開) 중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김덕린은 고모 고모부와의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불꽃같은 인생을 기대하여 이름을 “염(焰)”으로 바꾸고 무단가출 텐진에서 상하이로 가는 증기선에 몸을 실었다.
상하이 영화사에서 취직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고 기회를 보고 있던 중 “야초한화(野草閒花)”에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 후 수많은 영화에 출연 나중에 ‘영화황제(影帝 film emperor)’로 등극한다.(졸저 ‘한중일 삼국문화의 지혜’ 참고)
중국에서 한류 드라마의 주인공 김수현의 인기가 높자 어느 중국 지인은 김수현를 보면 80년 전 김염의 인기를 보는 듯한 착각을 빠진다고 하였다.
1948년생인 아들 첩이 10대에 정신 장애를 앓았으나 김염- 친이 부부는 문화혁명 시절에 홍위병에 의해 쫓기는 몸이 되어 약을 제대로 구할 수 없어 병이 악화되었다. 김염이 1983년 상하이 화동병원에서 작고하자 친이는 김염의 유언에 따라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돌보아 주변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아들 첩은 정신은 장애가 있었으나 그림에는 소질을 보여 약간의 작품을 남겼다. 2002년 미국의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친이의 아들 사랑에 크게 감동하여 첩의 그림을 2만 5천불에 사갔다고 한다. 2007년 첩이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친이가 아들을 위해 저금해 둔 20만 위안을 그 다음해 사천성에 지진이 발생하자 아들의 이름으로 구호기금으로 보냈다.
한국인을 사랑하고 결혼한 중국 최고의 미인 친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상하이 영화계를 지키고 있다. 상하이 분트(外灘)의 아르 데코 풍의 옛 건물군들은 화려했던 올드 상하이의 김염- 친이 한중(韓中) 카플의 로맨틱한 상하이 생활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