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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익·고비용의 함정 빠진 헤지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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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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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 교수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들이 ‘대체투자’를 늘리고 있다. 대체투자란 전통적 투자 수단인 채권·주식 등을 대신해 헤지펀드·사모펀드 등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대체투자는 투자 다변화를 통해 안정된 수익을 올리거나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지금 국내에서 대체투자를 늘리는 것은 안정성보다 고수익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노동인력은 정체되는 데다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면서 멀지 않은 장래에 연금 고갈현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 11개 연금 투자실적 부진
캘퍼스도 헤지펀드 투자 중단
헤지펀드 중 3분의 2가 폐업
국민연금도 대체투자 신중해야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흐름을 보면 대체투자의 수익률이 막연히 높아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을 뿐 투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수익률이 실제로 얼마나 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가 거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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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의 기본은 ‘고위험·고수익’과 ‘저위험·저수익’이다. 고수익을 추구한다면 그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안전하게 운용하려면 저수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고위험·고수익’ 전략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굴리는 연금들이 택하기 어렵다. 대체투자는 그래서 ‘저위험·고수익’을 안겨 줄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 주면서 연금을 끌어들인다. 그렇다면 연금들은 ‘저위험·고수익’이라는 예외적 상황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철저하게 따진 뒤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최근 루스벨트연구소가 내놓은 ‘빛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란 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서는 헤지펀드에 430억 달러(약 50조원)를 투자한 미국 11개 연금의 총 88회계연도(연금당 평균 8회계연도) 실적을 분석했다.

 결론은 헤지펀드 투자가 ‘저수익·고비용’이라는 것이다. 11개 연금은 헤지펀드 투자에서 다른 투자에 비해 80억 달러의 상대적 손실을 봤다. 반면 수수료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헤지펀드에 낸 수수료는 총 71억 달러였다. 헤지펀드가 벌어 준 수익의 57%에 달했다. 같은 규모의 다른 펀드들에는 수익에 대해 평균 5%의 수수료를 냈다. 이 보고서는 헤지펀드 수수료 비밀조항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보통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는 표면적으로 ‘2%-20%’ 룰을 적용한다. 투자 성과와 관계없이 투자총액의 2%를 선(先)수수료로 떼고, 이익의 20%를 성과급으로 가져간다. 보고서는 “비밀조항 때문에 추정치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모든 수수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최대 연금인 캘퍼스(CalPERS)도 지난해 비슷한 근거에서 헤지펀드 투자를 중단했다. 캘퍼스는 2002년 헤지펀드 투자를 시작했다. 대체투자의 선구자인 셈이다. 그 후 헤지펀드 투자 붐이 불어 현재 전 세계 헤지펀드가 굴리는 자금 2조7000억 달러(약 3100조원)의 40%가량이 연금에서 나온다. 공적연금이 5400억 달러, 사적연금이 5000억 달러 정도를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캘퍼스는 ‘높은 비용과 복잡성(high costs and complexity)’으로 인해 더 이상 이런 대체투자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13년의 경우 캘퍼스 총자산의 80%를 차지하는 전통자산에서는 운용비가 4000만 달러 들었다. 그러나 자산의 20%를 차지하는 대체투자에서는 운용비가 그 스무 배에 달하는 8억 달러가 들었다. 캘퍼스 관계자는 “헤지펀드의 성과가 일반적으로 좋다는 증거가 없고, 어느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체계적으로 판단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헤지펀드의 성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업계에서 내놓는 보고서들은 당연히 ‘고수익’을 내세운다. 조지 소로스, 제임스 사이먼스 등 오랫동안 고수익을 낸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수익률이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예를 들어 파이낸셜타임스의 ‘좀비 헤지펀드 시리즈’에 따르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헤지펀드 2만5000개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만6200여 개가 폐업했다. 업계에서 내놓는 수익률엔 망한 헤지펀드의 수익률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그나마 살아남아 있는 헤지펀드들도 수익률이 높은 것은 소규모 펀드가 많고, 규모가 큰 것들은 다른 펀드보다 수익률이 높다고 할 근거가 없다고 밝힌다. 연금과 같이 대규모 자금을 지속적으로 굴려야 하는 경우 헤지펀드가 ‘대안’이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이번 루스벨트연구소 보고서는 수요자 측에서 내놓은 첫 번째 종합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공급자 측 보고서와 수요자 측 보고서 중 무엇을 더 신뢰할 수 있겠는가. 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굴리면서 사회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갖고 있다. 대체투자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금융의 정석(定石)에 비춰 볼 때에 지속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등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