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말고 전대 하자” … 문재인에게 결투 신청한 안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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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안·박 연대만으론 당의 활로를 여는 데 충분하지 않다”며 문재인 대표가 전날 밤 안 의원을 비공개로 만나 ‘3자 연대’를 요청한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문규 기자]

다른 당도 아닌 같은 당에서 ‘연대’ 얘기가 나왔던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일단 그 연대론은 불발로 끝났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은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대표의 ‘문(재인)·안(철수)·박(원순) 3자 연대’ 제안을 거절했다. “문·안·박 연대만으론 당의 활로를 여는 데 충분하지 않다”면서다.

안 “혁신 전당대회 하면 나도 출마”
문 “두루 의견 듣겠다” 답변 유보
문 대표 측 “문 단독대표로 가야”
일각 “거부하면 안, 탈당 명분 생겨”

 제안을 받은 지 11일 만이다. 대신 안 의원은 “더 담대하고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내년 1월 혁신전당대회’를 열자고 역제안했다. 전대를 치를 경우 “나도 출마하겠다”고 했다. 문 대표 역시 전대에 참여해달라고 요구한 안 의원은 “문 대표에게도 새롭게 리더십을 회복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전당대회를 치르려면 일단 문 대표는 사퇴해야 한다. 결국 안 의원의 역제안은 문 대표에게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일대일로 정면승부를 벌여 승자에게 패자가 협력하도록 하자는 얘기다. 안 의원은 전대 이후엔 새 지도부가 2단계로 천정배 신당과의 통합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폭주를 저지하는 ‘통합적 국민저항체제’를 구성하자고 했다.

 문 대표는 전날 밤 안 의원을 비공개로 만나 ‘3자 연대’ 합류를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안 의원에게 ‘문·안·박 연대’ 수용이라는 공을 넘겼던 문 대표는 거꾸로 본인이 공을 넘겨받았다. ‘핑퐁게임’처럼 다시 넘어온 안 의원의 역제안에 대해 문 대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문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천정배 신당 등과 연대해 박근혜 정권의 독재와 독주를 막자는 데엔 공감한다”면서도 “문·안·박 연대가 무산된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대 개최 문제에 대해선 “당내에서 조금 더 의견을 듣고, 최고위원 등의 의견도 두루 듣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2012년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여론조사 룰 문제로 줄다리기 협상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룰 문제에 합의가 안 되자 안 의원은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지루한 줄다리기 과정은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안 의원이 정면으로 문 대표에게 맞대결을 신청했다는 점이 당시와 다르다.

 지난 9월 재신임을 제안했다가 국민여론조사를 앞두고 당 중진들의 만류를 받아들여 재신임 투표를 철회했던 문 대표 입장에선 안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다시 한 번 재신임 전대를 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문 대표는 답변에 신중한 모습이었지만 측근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문 대표 측근 중엔 “이제 문 대표 단독으로 총선까지 끌고 갈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강경론자도 상당하다. 한 측근은 "문 대표가 사퇴 후 또 전대에 출마하면 당권 욕심밖에 없는 사람이라고들 할 텐데 상식적으로 출마가 가능하겠느냐. 안 의원의 제안은 사실상 당권을 본인에게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 문 대표의 입장 발표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승부수로 던진 ‘문·안·박 연대’가 무산된 상황에서 문 대표 역시 비주류를 대표한 안 의원의 제안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을 만큼 당내 사정이 녹록지 않다. 한 당직자는 “문 대표가 거취 논란을 해소할 방안으로 내놓은 게 ‘문·안·박 연대’였는데, 그물에 가두려고 했던 안 의원이 그물을 찢고 나와버렸다”며 “전대를 받지 않곤 문 대표가 통합을 위해 내놓을 다른 뾰족한 방안은 없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문 대표가 전대를 거부하면 안 의원에게 탈당 명분을 줄 수 있어 문 대표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이 당내 친노·운동권 그룹을 겨냥해 ‘낡은 진보 청산’을 줄곧 주장해온 만큼 전대 국면에서 ‘운동권 대 비운동권’ 출신으로 당이 갈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안·박 연대’에 참여 의사를 밝혔던 박원순 서울시장 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두 사람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 다른 것 같다. 절박하게 논의하고 결단하는 과정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 2·8) 전당대회 선거 결과를 뒤집을 권위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 시도한다면 우리는 쿠데타라고 한다”고 말했다.

글=김성탁·이지상 기자 sunty@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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