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조도 외면하는 정치투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올해 노동계의 하투(夏鬪)에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상급단체의 일정에 맞춘 파업투쟁에 단위노조 조합원들이 반발하거나 이탈하는 양상이 표출되고 있다.

부산지하철 파업에는 10% 미만의 조합원만 참여했고, 핵심인 승무지부 기관사들은 전원 불참했다. 그 결과 지도부가 하루 만에 파업을 철회하고 협상을 타결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한 정치투쟁에 대한 거부감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같은 날 파업에 들어갔던 대구 지하철 노조에는 상급단체의 무리한 요구를 비난하는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조합원들이 동요하자 집행부가 협상타결을 서둘렀다고 한다.

이 같은 양상은 현대자동차 등 민주노총 산하 1백여개 사업장의 부분파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 찬반투표에서는 찬성률이 역대 최저인 54%에 그쳤다.

일반 노조원의 밑바닥 흐름이 이런 식으로 잡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기업노조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한국노총으로선 자업자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주5일 근무제 실시, 경제자유구역법 폐기, 노조 경영참여 등 정치성을 띤 무리한 요구사항을 내걸어 왔다.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인 4%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장 취업난 등 경제.사회적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서민생활과 직결된 '길거리 경제'도 꽁꽁 얼어붙었다고 한다.

대기업의 임금.근로조건이 중소기업을 크게 앞서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기업노조의 행태는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상급 노동단체나 노조 간부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투쟁을 선동한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정부는 노동계의 연대파업을 '명분 없는 정치적 파업'으로 규정하고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말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계도 무리한 정치투쟁은 조합원들의 마음을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회적 요구를 외면한다면 조합원의 이탈과 시민의 외면으로 고립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