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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 YS를 떠나보내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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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31면

큰 산, 거산(巨山)이 훙(薨)했다. 수만 인파가 영정 앞에서 붉은 눈으로 하얀 국화 꽃 송이를 올렸지만 그를 잃어 슬퍼하는 사람이 어찌 그들뿐이겠으며, 국민을 대신하여 온몸으로 저항하다 쫓겨나고 멱살 잡히고 갇히며 밟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열하는 사람을 어찌 숫자로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그런 민주화의 거산이 대통령 선거를 치른 1992년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매일 수십 개 기업이 부도처리되고 사업을 비관하는 중소자영업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목숨을 끊을 때였다. 이런 총체적 경제위기에서 국민은 민주화 영웅 거산에게 나라 경제를 맡긴 것이다.


대통령 취임 즈음 일본 엔화는 지속적으로 강세를 나타내 달러 당 150엔 하던 게 취임 2년 되는 95년 5월에는 달러당 83.2엔까지 떨어졌다. 당연히 한국의 수출은 탄력을 받았다. 수출증가율(전년 대비)이 92년 9%에서 95년 30%로 치솟으면서 경제성장률도 92년 6.2%에서 95년 9.6%로 뛰어올랐다. 엔고에 따른 수출호황으로 총체적 위기를 벗어난 95년은 문민정부 최고의 전성기였다. 이것이 문민정부 출범 당시의 ‘신경제 5개년계획’의 성과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에 전개된 일을 보면 아닌 것이 확실하다.


문민정부 경제를 침몰시킨 외환위기의 1차 도화선은 수출추락과 이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였다. 30%를 넘던 95년 수출증가율은 96년 4.1%로 떨어지고 경제성장률도 같은 기간 9.2%에서 7.6%로 추락했다. 93년 20억 달러 흑자이던 경상수지는 95년 97억 달러 적자에서 96년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238억 달러 적자로 커졌다.


이것만 해도 당시의 대외준비자산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규모였다. 외환위기 2차 도화선은 96년의 자본유출이었다. 소위 문민정부의 ‘세계화’ 바람을 타고 96년 해외직접투자 50억 달러, 해외증권투자 64억 달러, 해외대출 127억 달러, 합계 241억 달러의 자본유출이 일어났다. 경상수지 적자 238억 달러를 합하면 총 479억 달러의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한 셈이다. 96년 당시 대외준비자산 332억 달러로는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고 그나마 가용 가능한 대외자산은 그보다 훨씬 적었던 것이 확실하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도 한국의 가용대외자산(40억 달러 정도)이 장부에 적힌 대외준비자산(97년 220억 달러) 보다 적은 것에 깜짝 놀랐다고 증언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으로부터 실제로 받은 구제금융 금액이 160여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을 보면 97년 당시 대외준비자산 220억 달러라도 제대로 가용할 수 있었다면 외환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96년 문민정부는 무분별하게 차입했다. 증권부문에서 215억 달러를 조달했고 250억 달러는 만기가 짧은 은행차입 형태로 조달했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빌려야 하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자는 외국인들이 마음 놓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 ‘한국이 튼튼한 증거’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당연히 국가의 대외채무는 94년 800억 달러에서 97년에는 두 배가 넘는 1616억 달러로 늘어났다. 외자 조달의 주된 창구였던 대외차입이 97년부터는 급격히 고갈되기 시작했다. 분기에 70억 달러 정도 조달되던 대외차입이 97년 1~2분기에는 40억 달러 수준으로 줄었고 3분기 이후부터는 17억 달러 및 22억 달러 대출 회수로 돌변한 것이 결정적으로 외환위기를 촉발했던 것이다.


경제정책으로 보면 문민정부는 아쉬운 것이 많다. 첫째로 환율정책의 실패였다. 93년 집권 이후 95년까지의 수출호황이 국가 경쟁력 덕이라기보다는 엔고(달러 당 150엔에서 83엔)의 효과였음을 간과했다. 그랬기 때문에 95년 이후 엔화가 50% 이상 약세(95년 4월 83엔에서 97년 4월 126엔)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문민정부는 원화 강세(94년 1월 808원에서 96년 4월 778원)를 유지했다. 이것이 96~97년 경상수지 적자를 치명적으로 키웠던 것이다. 둘째로, 상황과 타이밍에 맞지 않는 무리한 ‘세계화 정책’의 추진이었다. 외환보유액도 충분치 않은데다가 경상수지 적자가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던 상황에서 무리하게 세계화를 추진했던 것이다. 셋째로는 무분별하게 차입했다. 특히 철저한 모니터링과 관리가 필요한 단기 차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이것은 지금의 가계부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이다.


거산의 민주화의 정신을 오래 기리듯이 문민정부의 정책실패도 오래 기억돼야 할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엔화가 50% 이상 절하된 상황에서 6분기 연속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수출이 10% 가까이 감소(울산은 23% 감소)하고 자본도 무섭게 빠져나가고 있다. 거산의 민주화 정신도 잊으면 안 되지만 문민정부의 실패 교훈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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