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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내 다리는 멈췄지만 내 힙합은 멈추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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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MC로 일어선 비보이 우정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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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하반신 장애를 딛고 비보이 무대에 오르는 사람이 있다. 배틀 MC 우정훈(35)씨다. ‘MC 고’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그는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하는 세계 대회 ‘R16 코리아’, 비보이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레드불비씨원’ 등 수많은 비보잉 대회에서 ‘섭외 0순위’ MC로 꼽힌다.

 배틀 MC는 댄서가 춤 실력을 겨룰 때 흥겨운 추임새를 넣으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자, 이제 시작합시다”, “지금 나오는 댄서는 팝핀○○!”라며 공연의 흐름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원래는 축구에 소질이 있었다. 성내초등학교 재학 땐 축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축구 선수의 꿈을 접었다. 수십만 원의 전지훈련비를 내거나, 유니폼·축구화 등 장비를 자비로 사기엔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우씨가 비보이 세계에 빠져든 건 고교 1학년 때다. 미군방송인 AFKN에서 ‘소울 트레인’이란 프로그램를 보고 흑인 댄서의 현란한 춤에 끌렸다. 이후 댄서 박근효(DJ Dust)와 함께 춤을 췄고, 학교를 졸업한 뒤엔 아예 팀을 결성해 활동했다.

 댄서로 촉망받던 우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건 2007년 1월이다. 부산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 전복됐고, 이 사고로 우씨는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됐다. 결혼 6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씨는 “눈을 떠보니 다리에 감각이 없었어요. 댄서로서의 커리어가 끝났단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죠”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재활 훈련에 들어간 우씨에게 동료 댄서 김송의 남편이자,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는 가수 강원래가 찾아와 “앞으로 못 걸어. 죽을 때까지 휠체어 타야 해”라고 말했다. 냉정한 강원래의 말은 오히려 힘이 됐다. 춤을 못 추게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전업 MC로 활동하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춤은 못 춰도 무대는 다시 서고 싶었어요. 과거 춤을 추면서 MC로도 틈틈이 활동했던 기억을 살렸죠.”

 무대로 복귀한 건 사고 7개월 만인 2007년 8월 ‘UK 비보이 챔피언십 코리아’에서였다. “수많은 관객이 내 이름을 외치자 ‘내가 살아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자리에서 관객들에게 ‘내 다리는 멈췄지만 심장은 여러분처럼 뛰고 있다’고 외쳤습니다.”

 다친 후 삶은 다소 불편해졌다. “하루 6~7시간씩 휠체어에 앉아 MC를 보면 욕창이 생겨요. 한땐 죽고 싶을 만큼 답답했고 괴로웠죠. 하지만 수많은 후배가 내 모습을 지켜본단 생각을 하며 기운을 냅니다.”

 그는 다치고 나서 삶의 목표가 오히려 커지고 많아졌다고 한다. “언젠가 세계적인 비보이 대회를 만들고 싶어요. 저처럼 몸이 불편한 댄서들이 실력을 뽐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만난 사람=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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