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추기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소돔에 천사 두 명이 찾아왔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집으로 안내해 묵게 했다. 그날 밤 소돔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며 두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롯이 대신 딸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무리는 듣지 않고 문을 부수려 한다. 천사들은 이들의 눈을 멀게 하고 도시 전체를 불구덩이로 만들어 버린다(구약성서 창세기 19장).

성경마다 조금씩 표현은 다르지만 소돔 사람들이 남색(男色)을 탐한 무리임은 분명하다. 사악한 도시 소돔이 멸망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 곧 죄(罪.Sin)는 동성애다. 기독교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서구에선 동성애 문제가 신학적 쟁점이 되고 있다.

동성애자가 기독교의 성직인 주교(主敎)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주교는 12사도의 후계자로 신과 인간을 연계하는 권능을 부여받은 진정한 의미의 성직이다. 신부는 주교의 보좌역이다. 교황과 추기경도 모두 주교다. 교황은 맏제자격인 성 바오르의 후계자며,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을 지닌 주교다.

최근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영국 성공회가 그런 주교 자리에 동성애자인 제프리 존(50)박사를 내정했다. 그는 27년간 한 남자와 파트너(일종의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 왔다. '동성애자가 성직자가 되기 위해선 독신이어야 한다'는 규정(1991년 제정)에 따라 그는 혼자 살고 있다.

하지만 파트너와의 관계는 계속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자 일부 성직자가 반발하고 있다. 반면 옹호론자들은 정상적인 동성애 관계는 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소돔의 무리 같은 남색 혹은 폭행미수범과 다르다고 해석한다. 논란의 와중에 미국 뉴햄프셔주 성공회 교단에선 한 동성애자가 주교로 선출됐다.

이에 비해 한국의 성공회나 가톨릭은 우리 사회의 엄격한 도덕률처럼 교회 내적으로 보수적인 편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다분히 참여적이다. 주교 가운데서 가장 높은 위치인 김수환(83)추기경이 특히 그렇다.

처신에 한치의 빈틈 없는 그는 지난 반세기 현대사의 고비 때마다 고언(苦言)을 내뱉곤 했다. 그가 지난 23일 한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난국을 헤쳐갈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추기경의 평소 말투라기엔 극히 이례적일 정도로 강한 표현이다.

오병상 런던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6월 25일자 분수대에서 '성 바오로의 후계자'라는 부분을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