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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스푼 5] 사각사각 배 위에 윤기나는 고기, 육회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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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자매집’이 처음 육회를 팔던 1970년대엔 육회 한 접시가 1000원이었다. 요즘엔 1만2000원이다. 채 썬 배를 깔고 그 위에 육회를 얹은 다음 달걀 노른자를 얹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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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자매집에선 육회(가운데) 외에 주방에서 직접 손질한 간·천엽(위), 양념을 전혀 하지 않은 육사시미(아래)가 인기 메뉴다.

江南通新이 ‘레드스푼 5’를 선정합니다. 레드스푼은 江南通新이 뽑은 맛집을 뜻하는 새 이름입니다. 전문가 추천을 받아 해당 품목의 맛집 10곳을 선정한 후 독자 투표와 전문가 투표 점수를 합산해 1~5위를 매겼습니다. 이번 회는 육회입니다.

육회를 먹기 시작한 건 몽골 유목민이 먹던 날고기가 전해진 고려시대입니다. 한때 ‘오랑캐 음식’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미식가가 찾아가서 먹는 진미가 됐습니다. 조선시대 이후 전국에서 먹는 부위와 양념, 곁들이는 음식 등이 다양하게 발전했습니다. 서울 시내 소문난 육회 맛집을 전문가와 독자가 함께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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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자매집]  청계천과 함께 떴죠, 광장시장 육회거리 원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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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양념이 달고 짜지 않아 자꾸 찾게 된다.”(독자 장민지)

 “1974년만 해도 광장시장은 지금 분위기랑 많이 달랐어요.” ‘육회 자매’의 여동생 김옥희(63)씨가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던 70년대 광장시장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후 6시만 되면 대부분의 상점 주인이 문을 닫고 귀가하는 분위기였다. 천막조차 없어 비가 오면 흐르는 빗물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던 시절이었다. 언니 김민자(75)씨는 육회 외에 분식이나 한치 튀김 등 술안주도 팔았다. 당시 광장시장은 불을 써서 요리하는 걸 금지해서 모든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와야 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장사는 신통치 않았다. 그나마 잘 팔리는 건 육회였다. 자매는 분식과 술안주를 접고 육회만 팔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됐다.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방송·신문·잡지에 맛집으로 몇 번 소개되고 나니 전국구 맛집으로 명성을 떨쳤다. 지방에서까지 육회를 맛보고 싶다며 찾아왔다. 육회자매집이 잘되자 주변 설렁탕집도 분식집도 하나둘 육회집으로 업종을 바꿨고, 어느덧 골목 전체가 ‘육회거리’로 불리기 시작했다. 옥희씨는 육회자매집을 둘러싼 다른 식당을 보면서 “원래 저긴 뭐였고, 저긴 누가 하던 가게였는지 생생하게 다 기억난다”고 했다.

 동생 옥희씨는 오전 6시30분이면 출근해 양념장을 만든다. 커다란 들통에 설탕·소금 등 갖은 양념을 배합해 끓여 두면 다른 직원이 하나둘 나와서 육회와 육사시미용 쇠고기를 손질한다. 고기 다루는 직원 중에 10~15년 일한 직원도 여럿이다. 다듬은 고기는 양념을 부어 두 시간 정도 숙성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잡맛이 사라지고 감칠맛이 밴다. 육회 주문이 들어오면 접시에 얇게 채 썬 배를 깔고 그 위에 육회 200g과 날달걀을 올린 뒤 깨를 뿌려 낸다. 이 집의 육회는 고기 질이 좋고 맛이 한결같다는 평을 듣는다. 육회자매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총 3개의 매장이 있다. 1호점은 김씨 남편이, 2호점은 김씨의 큰아들이, 3호점은 작은아들이 운영한다. 김씨는 하루에도 열댓 번씩 1,2,3호점을 뛰어다니며 손님 불만은 없는지, 음식은 제대로 됐는지 체크한다. 김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온 가족이 사이좋게 육회를 팔며 맛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답했다.

○ 대표 메뉴: 육회(200g) 1만2000원, 육사시미 2만4000원, 육회비빔밥 6000원
○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30분, 월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2274-8344
○ 주소: 종로구 종로4가 177
○ 주차: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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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집]  고기 맛 입소문 났죠, 강남 육회비빔밥 하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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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윤기가 흐르는 고기 빛깔만 봐도 식욕이 돋는다.“(독자 정주경)

 1994년 청담동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콩나물국밥과 따로국밥을 팔던 흔한 동네 식당이었다. 문득 고깃집을 하면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한 박곤옥 대표. 새벽마다 고속버스를 타고 전라남도 함평과 화순으로 내려가 아이스박스에 쇠고기를 가득 담아오기 시작했다. 한우 유통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고기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가게가 점점 커지면서 지하와 지상 1·2층까지 있는 지금의 규모가 됐다. 아직도 박 대표는 고기 다듬는 작업을 직접 한다. 등심 생구이, 양념 갈비, 불고기 메뉴도 있지만 점심 손님의 90%는 육회비빔밥을 주문한다. 숙주나물·당근·콩나물·호박·고사리 등 갖은 채소를 넣은 비빔밥에 설탕과 소금으로 부드럽게 간을 맞춘 육회를 날달걀과 함께 올려준다.

○ 대표 메뉴: 육회 비빔밥 1만원
○ 운영 시간: 24시간, 연중무휴
○ 전화번호: 02-546-5739
○ 주소: 강남구 청담동 129-10
○ 주차: 발레파킹(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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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육회]  진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 한잔하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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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살살 녹는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다.”(독자 이상훈)

 1위 맛집 ‘육회자매집’과 함께 광장시장 골목에서 인기 많은 육회집이다. 3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육회를 팔았다. 60~70명이 앉을 수 있는 꽤 넓은 매장인데도 이른 아침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파는 육회는 고소하고 향이 진해 술안주로 인기가 높다. 참기름은 국산을 쓰고 배는 달고 아삭한 나주 배를 쓴다. 달걀흰자는 버리고 노른자만 쓴다. 흰자가 들어가면 비릿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노른자를 터뜨려 육회와 함께 비벼 먹으면 맛있다. 입구 쪽 카운터에는 채 썬 배, 달걀노른자, 육회를 진열한 포장 전용 냉장 쇼케이스가 별도로 있다. 주문 즉시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아이스팩과 함께 포장해 주는데 주말에는 번호표를 뽑고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붐빈다.

○ 대표 메뉴: 육회(200g) 1만2000원, 간·천엽(200g) 1만2000원
○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11시, 셋째 주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2266-6727
○ 주소: 종로구 종로4가 165-4
○ 주차: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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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  공처럼 뭉치고 겉만 살짝 지져 불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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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 때마다 찾는 단골집. 비린내 없는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독자 이영신)

99년 강원도 횡성에서 시작한 고깃집 ‘우가’가 올해 신사동에 연 고깃집이다. 우가는 원래 고기 좋아하는 매니어가 횡성까지 찾아가서 먹는 집으로 유명했다. 신사동 매장은 노란색 은은한 조명과 인조 잔디로 꾸몄고, 여러 개의 독립된 방이 있어서 여느 고깃집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입구에 들어서면 드라이에이징 고기 전용 쇼케이스에서 숙성 중인 한우가 보인다. 주문하면 잘게 썬 육회를 햄버거 패티처럼 둥그렇게 뭉쳐서 내준다. 채 썬 배는 고기와 별도로 담아준다. 양념육회는 토치(휴대용 가스 불)를 든 직원이 즉석에서 고기 윗부분을 구워주는데 불맛이 살짝 더해지면서 맛을 더한다.

○ 대표 메뉴: 육회비빔밥 1만7000원
○ 운영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명절 휴무
○ 전화번호: 02-6272-2223
○ 주소: 강남구 신사동 653-20
○ 주차: 발레파킹(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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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접시]  설탕 대신 꿀, 달걀노른자 대신 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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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과 살코기의 조화가 환상적이다.”(독자 진성희)

 2007년 신사동에 처음 문을 연 프랜차이즈 육회집이다. 고기 품질이 일정하고 신선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4호점까지 확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복고풍 인테리어에 ‘응답하라 1998’ 세대가 열광할 만한 댄스그룹 H.O.T, S.E.S, 핑클, 젝스키스의 노래가 흘러나와 추억을 자극한다. 주메뉴는 육회다. 부위는 우둔살과 설깃살을 섞어 쓰고 양념은 참기름과 소금을 배합해서 만든다. 설탕 대신 꿀을 첨가해 단맛이 진하고 깊다. 채 썬 배 외에 무순을 따로 내줘 육회에 곁들여 먹는다. 달걀노른자는 찾는 손님에게만 제공한다. 다른 집에 없는 독특한 술안주 쇠고기 튀김도 있다. 우둔살에 튀김 가루를 입혀 튀긴 다음 진간장과 식초를 넣은 소스를 뿌려주는데 바삭하고 새콤한 맛이 별미다.

○ 대표 메뉴: 육회(200g) 2만5000원, 육사시미(大) 3만원, 쇠고기튀김 1만8000원
○ 운영 시간: 오후 5시~새벽 5시
○ 전화번호: 02-547-0017
○ 주소: 강남구 신사동 539-5 1층
○ 주차: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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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식은 고추장 양념에, 유럽식은 올리브오일에

육회는 떡볶이나 설렁탕처럼 누구나 즐겨 먹는 음식은 아니다. 고기를 날것으로 먹는다는 게 달갑지 않은 이에게는 환영받지 못한다. 반면 좋아하는 사람은 날것 그대로의 육사시미도 뚝딱 먹어 치운다. 육회 매니어인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는 “고급 육회일수록 양념을 적게 하고 고기 자체에서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며 생각날 때마다 육회집을 찾는다고 했다.

 사실 육회는 아시아 그 어떤 곳보다 우리 민족이 즐겨 먹었다. 일본인은 스시를 즐겨 먹지 육회는 먹지 않는다. 중국인도 그렇다. 17세기 중국에 다녀온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는 ‘중국인은 말린 고기도 다시 익혀 먹는다. 조선 사람이 회를 먹는 걸 보면 웃는다’는 문장이 나온다.

 몽골 유목민은 예외다. 13세기 중반 칭기즈칸이 유럽을 원정할 때 쇠고기가 든 식량 주머니를 말에 싣고 다니며 적당히 부드러워지면 날것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유럽인은 유목민을 두고 ‘달단족’이라고 불렀는데, 이 때문에 달단족이 먹던 날고기가 ‘타르타르’(Tartare)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요즘 프랑스 식탁에 오르는 고급 요리 타르타르 스테이크의 원조다. 인문학자 주영하씨는 『식탁 위의 한국사』에서 이때 몽골족이 고려에 육회를 전했다고 썼다.

몽골 유목민의 날고기 음식, 고려 때 전파
“연하고 기름기 적은 치맛살·홍두깨살 써”
유럽 ‘타르타르 스테이크’도 몽골서 유래

 조선시대 육회 조리법은 조선 말기 요리책 『시의전서』, 왕가에 올린 음식을 담은 『진찬의궤』에 자세히 나온다. 기름기 없는 연한 쇠고기를 저며 채를 썰고, 갖은 양념에 재우고 잣가루를 섞는『시의전서』의 레시피가 요즘 조리법과 가장 비슷하다.

 김옥희 육회자매집 대표는 “연하고 기름기가 적은 부위를 쓰는 게 정석”이라고 말했다. 실꾸러미처럼 생긴 앞다리 근육 꾸리살, 치마 주름처럼 생긴 뒷다리 쪽 치맛살, 결이 있어 장조림 할 때 많이 쓰는 홍두깨살이 육회용으로 인기다. 이들 부위는 지방이 적고 식감이 쫄깃하다. 입 안에 넣으면 부드럽게 착 감기는데 막상 씹으면 쫄깃해 감칠맛이 난다.

 양념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1920년대 전국에서 가장 큰 우시장이 열렸던 전북 전주에서는 고추장으로 양념한다. 경북 지역의 대구식도 있다. 엄지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로 뭉텅뭉텅 썰어낸 ‘뭉티기’ 고기를 고춧가루·마늘·참기름 등 갖은 양념을 섞은 장에 푹 담가 숙성해서 먹는다. 뭉티기란 소 뒷다리 안쪽 허벅지에 있는 처지개살을 뜻한다. 서울식은 설탕·간장·소금을 섞어 약간 달착지근한 맛이 나게 한다. 육회자매집이 그렇다.

 육회집에 가면 천엽(소의 위의 한 부분)과 간, 두 가지가 항상 반찬처럼 딸려 나온다. 천엽은 소화를 돕고 간은 눈을 좋게 한다고 알려졌다. 좋아하는 사람은 추가로 주문해서 한 접시를 비우기도 하는데 간은 육회처럼 무게를 정확히 맞춰 팔기 어렵다. 주인 기분에 따라 더 큰 덩어리가 나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덤’이다.

 타르타르 스테이크는 ‘서양식 육회’다. 올리브오일과 소금·후추로 간을 한 쇠고기를 잘게 갈아 덩어리 모양으로 만들어 접시에 올리고 그 위에 달걀노른자, 마늘 등 갖은 재료를 얹어 만든다. ‘카르파치오’는 이탈리아식 육회다. 종잇장처럼 얇게 저민 쇠고기 위에 마요네즈, 우스터 소스, 레몬 주스를 섞은 소스를 뿌려 주는데 메인 음식보다는 전채 요리에 가깝다.

글=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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