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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 2명 위장 난민 … IS가 노린 건 유럽의 '난민 증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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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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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프랑스 알리베르가에서 구조대원들이 테러 희생자들을 옮기고 있다. 이곳에선 15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 AP=뉴시스]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로 유럽연합(EU)의 톨레랑스(관용주의)가 흔들린다. 13일(현지시간) 발생한 파리 테러로 유럽의 난민 정책이 시험대에 오르면서다. 프랑스 경찰은 여권과 지문 분석 결과 테러범 중 두 명이 그리스 레로스섬에서 난민 등록 후 프랑스로 입국했다고 밝혔다. 난민 유럽 유입 관문인 폴란드는 즉시 난민 수용을 중단했고, 벨기에·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은 국경을 통제하고 경계태세를 대폭 강화했다.

시험대에 오른 난민정책
폴란드 즉시 난민수용 중단 선언
벨기에·이탈리아 국경 통제 강화
“유럽이 문 걸어잠궈 난민 차별 땐
IS는 분노한 난민 우군화 노려”

 유럽은 그동안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난민 포용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올해 북아프리카와 시리아 등지에서 8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오며 내부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3만 명이 입국했다.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 등 10여 개국은 국경에 전자철조망을 설치하는 등 ‘난민 장벽’을 설치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난민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발생했다. 난민을 통제할 ‘훌륭한 명분’이 만들어진 셈이다.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은 14일 “당장 국익을 위해 국경을 통제해야 한다”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발붙이지 못하도록 이슬람 기관을 금지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 테러의 분노가 IS 등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난민과 이슬람교도에게 향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중동 출신이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을 당한 것처럼 말이다. 이탈리아 야당인 북부동맹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14일 “이슬람은 절대 민주주의와 통합될 수 없다”며 “모든 이슬람 커뮤니티를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유럽에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증)가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며 “난민들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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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움직임은 유럽이 난민을 차별하고, 난민이 유럽을 증오하는 ‘증오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수십만의 중동 출신 젊은이들은 이미 유럽에 자리를 잡고 있다”며 “이들이 이번 테러로 차별받는다면 극단주의로 돌아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CSIS는 이어 “IS는 테러에 놀란 유럽이 문을 걸어 잠그길 바란다”며 “IS가 갈 곳 없는 분노한 난민을 자신들의 전투원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먼 곳의 전쟁’이라 여겼던 IS 공포가 유럽 중앙 파리에서 현실화하며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미 10월 폴란드·스위스 총선에서 반(反)난민 정책을 지지하는 극우 성향 국민당과 보수 성향 ‘법과 정의당’이 승리를 거뒀고, 크로아티아 총선 등에서도 우파가 승리했다. 뉴욕타임스는 다음달(12월 16일)로 예정된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FN)의 지지율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 보수화가 가속될 경우 유럽이 민족주의·국가주의로 회귀하며 EU가 분열될 수 있다. 유럽 극우 정당 이 EU의 난민 정책에 반대할 뿐 아니라 ‘하나의 유럽’ 정책에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빈 리블렛 채텀하우스 소장은 “파리 테러가 노린 것은 프랑스라는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 통합이라는 상징성”이라며 “파리 테러가 하나의 유럽을 흔들고 유럽이 바뀌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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